어느 봄날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창 중에 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며 문병을 가자는 친구의 의견이었다. 야학으로 고등학교를 다닌 우리는 남다른 우정으로 뭉쳐서 지냈으나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 그것마저도 퇴색이 되고 연락이 안 되는 친구도 더러 있다. 그런 친구 중에 한 친구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친구이며 슬픈 이야기다. 피치 못할 예기치 않은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서둘러 약속 장소에 가서 기다리는데 전화가가 띵동 하고 울린다. 낯익은 이름의 부고다. 가슴이 철렁한다. 이 친구 병문안 갔을 때 경과가 좋다고 했는데 부고가 날라 오다니 하늘이 노래진다. 열정이 유난히 많았던 10대 후반에 야학을 통해 만난 친구들, 열심히 노력한 결과 모두 잘 성장해서 나름 각자에 분야에서 잘 살아왔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현업에서는 물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몸이 병들어 병마와 싸우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이 친구 역시 나름 잘 나가던 친구로 연봉이 억대가 넘는 친구라 잘 나가던 시절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잘 어울리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받은 연락으로 소식을 알게 되니 말 그대로 참담하다. 처남이 하는 사업에 보증을…
최근 대입제도 개편과정에서 ‘결정장애’라는 얘기를 들은 것은 교육부 실정의 단면일 뿐이다. 이에 문 대통령은 장관교체 카드를 꺼냈지만 인물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특히 대학에 관해서는 근본 철학을 바꾸지 않고는 누가 장관이라도 같을 것이다. 유치원부터 대학원, 학원과 평생교육까지 업무가 많기도 하지만, 모든 교육업무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 문제다. 대학정책만 해도 주먹구구이거나 정치편향적이라 할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대학강사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2010년의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조항)은 아직 시행도 못하는 대표적 탁상행정이다. 강사들도 강사법을 반대해 왔다. 이 법 때문에 실제로는 강사들의 일자리만 줄어들었다. 대학 탓이 아니다. 처우개선에 필요한 예산의 부족뿐 아니라, 한 학기만 개설되는 과목도 많은데 매학기 강의를 맡기려 무리하는 대신 그 과목을 없애는 것이다. 비교육적 결과다. 또 학문적 다양성을 위해 교수채용 시 한 대학 출신이 3분의 2를 넘지 못한다는 규정도 있다. 그런데 그 기준이 학부다. 학부는 달라도 같은 대학원을 나오면 학문적 성향이 비슷하고, 같은 학부출신이라도 다른 데서 학위를 하면 달라…
참빗살나무 /김윤숙 참빗처럼 나뭇잎을 파고드는 저 햇살에 한라 능선 차오르는 치렁치렁 그 머릿결 언젠가 마주친 소녀 빛나던 이유 알겠다 어머니 나를 눕혀 서캐를 고르시던 그 손길 설핏 든 잠, 홀로 깨어 서러운 날 땀 냄새 절은 머리칼 참빗살나무 근처다 몇 번을 멈칫대다 끝내 찾지 않은 집 수직의 돌계단 산정 아래 이르러 푸르름 순명으로 받드나 붉게 익는 열매들 햇살이 빗살무늬로 내비칠 때 김윤숙 시인은 ‘참빗살나무’ 작품을 착안하였을 것 같다. 일렁이는 햇살이 한라산의 능선으로 연결되고 다시 반짝이는 소녀의 머릿결로 이어지는 첫수에서 생명력이 느껴진다. ‘어머니 나를 눕혀 서캐를 고르시던’ ‘그 손길’에서는 그리움이 실감난다. 그러다가 ‘홀로 깨어’ 엄마가 없을 때 그 눈물 나는 심정이란, 어린 시절 한 번쯤 겪어보거나 공감할 대목이다. ‘끝내 찾지 않은 집’은 내면의 상처를 앓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감지된다. 참빗살나무는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고 약재로 쓰이기도 하며 빨간 열매가 열린다. 이렇게 붉은 열매로 일생을 거두기까지 참빗살나무를 시적…
배후 /정영주 거미의 허기가 그물에 걸린 찢어진 벌의 날갯짓에 멈춰 있다 날개가 퍼덕일 동안 허기를 다독이는 저 교활한 배후, 한참 그 독한 정적을 노려보다 내 속에 여러 갈래로 얽힌 잔인한 그물을 읽는다 누구에게나 들키고 싶지 않은 깜깜한 정적이 있다 - 정영주 시인의 시집 ‘바당 봉봉’ 중에서 영문도 모른 채 벌의 날개는 찢어지고 벌은 또 거미의 허기를 달래는 희생물이 되어야 하리라. 그렇다면 거미의 허기는 악인가. 아니다, 거미의 허기는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자연이 허락해준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허기란 것이 없다면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나의 허기는 무엇일까. 잔인하지만 나의 존재 의미를 위해 내가 남모르게 쳐놓은 그물과 그 배후의 정적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을까. 나의 그물이 아무리 여러 갈래로 얽히어 있다 해도, 바라건대 그것은 돈이나 명예 그딴 것들이 아니라 사랑이기를, 사람에 대한 사랑이기를, 그것도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이기를. /김명철 시인…
정기국회가 오늘부터 100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각종 입법안 처리뿐만 아니라 예산안 심사, 국정감사를 실시하는 정기국회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미중 무역갈등이 확산하고 국내 경제지표도 심상찮은 데다가 북한 비핵화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가 새로운 고비에 직면한 엄중한 상황에서 열리는 올해 정기국회의 중요성은 더 막중하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문재인 정부 집권 2년 차를 맞아 여야 간에 각종 쟁점 법안을 둘러싼 본격적인 입법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470조5천억 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을 둘러싼 경제정책의 충돌도 예상된다. 내년에는 주요한 선거가 예정돼 있지 않지만, 정치공방이 가열되면서 자칫 민생이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야당은 존재감을 드러내며 현 정부의 실책을 부각하겠다는 의지를 엿보이고 있고,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입법 과제를 뒷받침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어 곳곳에서 전선이 펼쳐질 공산이 크다. 어느 한 당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20대 국회는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명령을 받은 지 오래됐다. 협치는 당위 이전에 이미 숙명인 상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소야대 지형 속에 야당을 존중하며 진정한…
지난 8월 29일은 경술국치 108주년을 맞은 날이었다. 8·15 광복절과 3·1절은 모든 국민이 기억하지만 경술국치일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지나간다. 경술국치일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빼앗은 날이다. 1910년 이날 한일병합조약이 강제로 체결·공포됐다. 이 후 1945년 일제가 항복 선언을 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탈취했다. 그에 앞서 1905년 강제적인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한일 신협약을 맺어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국권을 찬탈하기 위한 작업은 차근차근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그리고 강제 병합 후에도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목숨을 걸고 저항했지만 결국 나라를 잃고 말았다. 이때에 매국노 친일파들이 득세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완용이다.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은 우리나라 통치권을 일본 천황에게 넘긴다는 내용의 한일합병 조약안 통과에 앞장섰다. 친일파들은 민족과 국가를 배신하고 일제에 충성한 대가로 호의호식했다. 이 무리들은 해방이 되고 나서도 척결되지 않았다. 후손들까지 경제, 문화, 교육, 정·관계 등을 장악하며 대대손손 잘살고 있다. 반민특위가 친일파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이승만정권의 방해로 제대로 된 활동을
‘장관의 성공적인 업무수행을 위한 지침서’란 것이 있다. 언론의 하마평에 오르내릴 때, 장관 후보로 지명될 때, 국회 인사청문회 때 각각 무엇을 조심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적어 놓은 이른바 ‘장관 매뉴얼’이다.지난 2002년 중앙 인사위원회가 만들었다. 거기엔 “천재지변도 장관의 책임이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큰 수해가 나도 장관은 책임져야 한다.”“보통 사람과 같아선 안 된다. 밤잠도 자지 않고 일해야 한다” 부터 “새벽에 전화를 건 기자에게 친절하게 대답하라”는 등의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담고 있다. 비록 미국의 경우지만, 43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방장관이 됐고 백악관 비서실장과 하원의원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가 고위 공직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꼽은 ‘럼즈펠드 규칙’ 이란 것도 있다. 내용은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는다고 생각할 만큼 직언을 할 용기가 없다면 그 자리에 남아 있어선 안 된다. 비난받지 않는다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등이 담겨 있다. 공직자의 지침은 2000년 전에도 존재 했다. 중국 전한시대 유향(劉向)이란 학자가 정리한 ‘육정육사(六正六邪)’가 그것이다. 그는 바른 신하로 “앞일을 헤아려 군주에게 선정을 베풀도록 하는
우리나라는 사업자들이 부가가치세 신고를 3개월마다 하도록 되어 있다. 1월부터 3월까지의 기간에 대하여 4월 25일까지 신고해야 하는 등, 매 3개월마다 그 다음 달 25일까지 부가가치세를 신고해야 한다. 개인들의 경우 3개월마다 부가가치세를 신고하고 납부하게 하면 납세자들의 조세 협력 비용이 과다하다고 하여, 6개월마다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개인사업자는 3개월마다 전기 6개월의 부가가치세의 절반을 예정고지세액으로 내야 한다. 부가가치세는 일종의 거래세로써, 재화나 용역을 제공할 때 모든 거래에 대하여 10%의 세금을 징수하는 것을 뜻한다. 결국 국가는 모든 재화, 용역의 거래에 대하여 10%의 세금을 징수함으로써, 엄청난 세금을 걷게 된다. 부가가치세를 신고, 납부하는 자는 사업자들이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를 실제로 부담하는 자는 국민들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부가가치세를 부담하게 되어 있다. 부가가치세를 부담하지 않으려면 타인과의 거래 없이, 모든 것을 혼자 자급자족하면 된다. 만약 내가 만든 물건을 옆집에서 만든 물건과 교환하거나, 금전으로 환가하는 경우 10%의 부가가치세를 즉각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우리가 지자체에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감사만이 꽃길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걸어가는 향기 나는 길입니다.// 감사만이 보석입니다./ 슬프고 힘들 때도/ 감사할 수 있으면/ 삶은 어느 순간/ 보석으로 빛납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 ‘감사예찬’ 中- 이해인 수녀의 시처럼, 감사는 표현할 때 비로소 기쁨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감사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인정하고 말과 행동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좋은나무성품학교 정의)입니다. 감사를 느끼고 표현할수록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행복해진다는 미국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감사를 표현하면 낙관, 열정, 활력 같은 긍정적 감정을 경험할 때 활성화되는 왼쪽 전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되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뇌가 ‘Reset(재설정)’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설명합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주 평범한 일상이지만, 감사하기 시작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한 것을 발견하면 두려움을 내려놓고 다시 웃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를 감사하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곡예사와 새 /최서진 곡예풍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안 공이 사라진다 외줄을 타는 거룩한 밤 아슬아슬한 나의 묘기 줄을 타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밤처럼 나는 떨어지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새와 바람 때문에 하늘을 날 수가 없어요 나의 소원은 떨어지지 않는 것 공중에서 멈추는 것 그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 길을 공중에 만들어야 하니까요 곡예풍의 흥겨운 음악이 울린다. 폴카의 빠르고 경쾌한 박자는 곡예사는 물론이고 그 멋진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손과 발을 들뜨게 한다. 곡예사는 손에 딱 맞는 공 서너 개를 공중에 던지며 온갖 기예를 펼치는데, 갑자기 공이 사라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곡예가 마술로 변하는 순간의 그 환호는 관객이든 곡예사든 전율이다. 시의 전반부는 그러한 사태를 간결하게 담았다. 그리고 이제, 시점이 변해 시를 주동하는 주체인 ‘나’가 등장하고 두 번째 공연인 외줄타기와 함께 은밀한 고백이 시작된다. 공중에 그은 직선은 동아줄이다. 굵고 튼튼하게 꼬아야 곡예사의 하중을 견딜 수 있고, 또한 그 무게의 변곡을 줄 전체에 나눠줄 수 있다. 외줄을 타는 거룩한 밤이고 사람들은 아슬아슬한 ‘나’의 묘기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