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것들로 눈이 부시다.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녹음과 무논에서 들리는 개구리 울음이 정겹다. 베란다로 들어오는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유년의 기억들이 까무룩 되살아난다. 아버지가 논을 갈아엎고 물을 가두면 개구리가 산란을 했다. 까맣게 슬어놓은 알들 속에서 올챙이가 나왔다.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해가는 과정이 신기했다. 아버지는 들일을 하고 나는 검정고무신에 올챙이를 담아 가지고 놀곤 했다. 모내기가 끝날 무렵이면 올챙이도 개구리로 변신했다. 그 개구리가 자랐을 때 막내 동생 몸보신 시켜 준다고 잡아서 풀에 꿰어 들고 다니던 기억에 웃음이 난다. 농번기가 되면 아버지에게서 논 냄새가 났다. 무논의 질펀한 흙냄새였다. 어둑어둑해지면 일소를 앞세워 돌아오는 아버지의 발에는 흙냄새가 배어있었다. 허벅지까지 말아 올린 삼베바지는 늘 젖어 있었고 댓돌 위에 고무신을 씻어 엎어놓으면 그 속에서도 흙냄새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개구리가 울면 찔레꽃이 피기 시작했다.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 친구들과 이리저리 뛰놀다 찔레나무가 눈에 띄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한 줄기를 꺾어 벗겨먹곤 했다. 찔레나무 밑에는 뱀이 있다고 가지말라는 어른들의 걱정도 아랑곳없이
꼬리뼈를 벽에 걸다 /이해원 꼬리뼈가 탈이 났군요 꼬리 한 번 흔든 적 없는 데 꼬리가 있다니 내 전생은 짐승이었나 꼬리뼈를 만져본다 사라진 흔적이 남아 있다 꼬리는 언제 퇴화했을까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방 안을 기어 다녔고 망아지처럼 들판을 뛰어다녔다 달리기를 잘하고 당근을 잘 먹는 나는 어쩌면 말이 아니었을까 히잉 투레질을 하며 말 걸음을 흉내 낸다 저릿저릿 통증이 퍼진다 낮게 엎드린 계단이 발을 걸고 세상의 길이 꽉 막혔다 몸 밖으로 비명이 튀어나온 날 숨어있던 꼬리뼈가 나를 받아 주었다 보이지 않는 꼬리뼈가 내 몸의 의자였다 -시집 ‘일곱명의 엄마’ 인류의 기원을 700만년~500만년 전으로 볼 때 최초의 조상으로 회자되는 라마피테쿠스 이후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기까지 인류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늘 궁금하다. 정말 우리의 먼 조상들에겐꼬리가 있었을까? 직립원인으로 진화하면서 꼬리의 기능이 필요치 않아 퇴화했을까? 그 먼 기억을 붙들고 아직도 꼬리뼈는 대대손손 그 흔적을 대물림하는 것인가? 혹시 그 꼬리를 가졌던 업보로 짐승처럼 버거운 짐을 짊어지고 강파른 세상벌판을 달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과부하가 걸
5년간 150번 전화를 걸어 보험회사 전화 상담원에게 폭언과 욕설을 일삼고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5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재별가의 갑질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인 ‘갑질’이 국적기를 타고 세계로 날았다. 최근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과 관련해 외신들이 이를 ‘갑질(Gapjil)’이란 단어 그대로 소개한 것이다. 1980년대 ‘재벌(Chaebol)’이란 말이 영어사전에 등재된 데 이어 ‘갑질’까지 오르게 생겼다. ‘갑질’은 권력의 상하관계로 발생하는 부당 행위를 일컫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제 갑질의 주체는 대기업과 재벌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 직장은 물론, 가족과 친구 등 일상 관계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갑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회현상이다.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성인 2명 중 1명(54.3%)이 ‘갑질’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응답자들은 직장 상사(31.7
최근 한진그룹의 갑질경영 문제가 인하대학교로 확산되고 있다. 인하대는 최순자 총장이 학교 돈을 부실채권에 투자해 수 십억원을 날린 사실이 교육부 조사에서 드러나 지난 1월 해임됐다. 5개월 간 총장이 공석이어서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시민단체인 인천평화복지연대와 인하대 총학생회 동문협의회는 8일 대학 후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그룹의 인하대 지배구조 청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한진그룹의 ‘갑질경영’은 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도 똑같이 자행됐다”며 “제 입맛에 맞는 총장 선임과 이사회의 과도한 학교 경영 간섭,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부정편입학 등 갑질과 부정이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인하대는 국내 10대 명문 사립대학의 하나로 지난 1954년 하와이 동포들의 기금을 바탕으로 설립된 이후 1960년대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 이사장이 학교경영을 맡아왔다. 지금은 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으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이사장으로, 그의 아들인 조 사장이 이사로 있다. 조 사장은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1998년 인하대 3학년으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학점이 기준에 미달인데도 부정 편
지난 5월8일은 어버이날이었다. 부모님의 은혜를 꽃 한 송이로 어찌 갚을 수 있으랴만 자식들에게 카네이션을 받은 부모님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부모은중경’은 어버이의 은혜 10가지를 알려주고 있다. ▲아이를 배어 지키고 보호해 주신 은혜 ▲해산함에 이르러 고통을 받으신 은혜 ▲쓴 건 삼키고 단 건 뱉어서 먹여주신 은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신 은혜 ▲자식을 위해 모진 일 하신 은혜 ▲임종 때에도 자식 위해 근심하신 은혜 등이다. 그렇다. 어버이는 늙어서 임종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자식들에 대한 걱정을 거두지 않는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자식이 아버지를 왼쪽 등에, 어머니를 오른쪽 등에 함께 업고서 수미산을 백천번 돌더라도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처럼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느라 늙어 힘이 없어지고 병든 노인들이 학대받고 있다. 자녀들이 부모나 시부모를 다른 지역에 버려두고 도망치거나 집안에 감금하고 지속적으로 폭행을 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노인학대 유형으로는 폭행, 거주지 출입 통제, 협박이나 위협행위 등 신체적 학대가 많다. 또 신체가 불편한 노인의 생활을 방임하는 학대가 있고,…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 세금은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문제이다. 영업활동 확대나 원가절감을 통해 경영실적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예기치 못한 세무조사 한방으로 심각한 현금흐름의 장애가 발생할 수 있고, 회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경영과정에서 꼭 체크해야 할 세금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경영자는 회사의 장부, 전표, 증빙에 대한 관리상태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또 적기에 처리되고 있는지 상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세법은 회사의 모든 지출에 대해 적격증빙을 요구하며, 이를 갖추지 못한 경우 비용을 부인하거나 가산세를 부과한다. 세무신고 전에 회사의 재무제표가 회사의 실질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동종업종이나 동종규모의 다른 기업 재무제표와 비교검토 해서 원가율, 인건비율, 순이익율 등이 실질에 맞게 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과세당국의 전산분석상 문제가 발견되면 세무조사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재고자산의 평가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기말 재고자산과 매출원가는 역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어, 기말 재고자산 평가액이 증가하면 매출원가가 감소하고 이익이 늘어나게 된다. 재고자산이 과대계상 되면 이익이 늘어나…
남극의 신사 펭귄 어미는 알을 낳은 뒤 장장 보름 동안 먹이 찾기에 나선다. 아비 펭귄은 그동안 알이 얼을까봐 정성스레 품고 있다. 어미 펭귄이 돌아왔을 때 아비 펭귄은 굶주림과 눈보라 속에 지친 나머지 결국 바다로 나가 쓰러져 최후를 맞는다. 어미 펭귄은 뱃속에 저장해온 먹이를 토해 새끼들을 먹인다. 깊은 바다에 사는 연어는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은 후 한 켠을 지키고 있게 된다. 갓 부화되어 나와 아직 먹이를 찾을 줄 몰라 하는 새끼들이 맘껏 자신의 살을 뜯어먹게 하기 위해서다. 새끼들은 그렇게 성장하고, 어미는 결국 뼈만 남긴 채 새끼를 위해 죽음으로써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모성애를 보여준다. 미물들이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어버이의 마음은 사람의 그것 이상이다. 효도하는 미물들도 있다. 가물치는 알을 낳은 후 바로 실명하여 먹이를 찾을 수 없어 그저 배고픔을 참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부화되어 나온 수 천 마리의 새끼들은 어미가 굶어 죽는 것을 볼 수 없어, 한 마리씩 자진하여 어미 입으로 들어가 굶주린 배를 채워 준다. 어미가 눈을 뜰 때 쯤이면 남은 새끼의 양은 10%밖에 안 된다. 90%는 자신의 어린 생명을 어미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이다. 가물
관통 /이해존 담쟁이 넝쿨이 외벽을 올라탄다 전속력으로 밀려오는 바람에 뒤돌아보지 않고 필사적으로 매달려 펄럭인다 뒤돌아보다 상체가 젖혀진 것들 횡단하던 리듬을 잃는다 가랑이가 차창 불빛을 머리부터 잘라 먹는다 불빛이 박혀들 때마다 이파리들, 물방울 털어내는 고양이처럼 몸서리친다 질주하던 불안이 빠르게 미끄러진다 저만치 새어나오는 불빛이 초점을 흐린다 천장 불빛이 꼬리를 흔들며 흩어진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불빛이 신음 소리를 낸다 어둠을 들이박는다 먹먹한 경적 소리 터널을 휘젓는다 담쟁이 넝쿨 한쪽이 도로 한가운데 떨어져 있다 묵은 겨울을 내보내는 봄바람이 무척 매서웠다. 벚나무가 출렁거리면서 한꺼번에 흰 꽃들을 쏟아냈는데, 그때마침 내 몸에서도 무엇인가 불쑥 빠져나갔다. 온몸을 흐르던 몇 그램의 온기와 젖은 땀 냄새였다. 놓치지 않으려고 우악스럽게 움켜쥐었지만 전속력으로 밀려오는 바람은 더 크게 울며 나를 밀어냈다. 그때 시인이 본 것은 외벽을 올라타는 담쟁이 넝쿨의, 작지만 악착같은 생(生)의 의지다. 떨어져나갈지도 모른다는 (담쟁이 넝쿨의) 불안은 우리가 처한 실존이다. ‘질주하는 불안’은 저 바람처럼 우리의 삶을 고독과 죽음으로 내
수면이 뇌의 활동을 원활하게 해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가져온다는 데는 반론이 없다. 문제는 수면의 질이다. 편안한 잠은, 깊은 잠에 빠지는 ‘서파(徐波)수면’과 꿈을 꾸는 ‘렘(Rem)수면’이 반복돼야 가능 하다는 게 의학계 정설이다. 그렇다면 수면은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 물론 시간은 개인의 연령이나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학자들은 7시간의 수면이 가장 좋다고 한다. 얼마 전 미국 '내과학 학회지'최신호는 7시간 수면이 부족하면 체중이 불어난다는 조사결과를 실었다. 배고픔을 유발하는 호르몬 ‘그렐린’이 증가해서라고 한다. 아울러 수면시간이 당뇨병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되는가. 우리 국민 30%가 수면무호흡증, 불면증, 하지 불안증후군, 기면증 등으로 수면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스트레스, 과음, 과로, 과민 등이 일단 원인이라고 한다.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 등으로 인한 밝은 밤도 잠을 방해하는 요소다. WHO는 이로 인해 위궤양과 심혈관질환, 고혈압, 기억력 손상 등 심각한 문제점을 일으킨다고 경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수면장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환자가 크게 늘고 있어서다. 통계에 따르
“한반도에 평화의 길을 열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10일이 문재인 정부 출범 1주년이다. 청와대와 국무조정실이 발간한 ‘문재인 정부 1년-국민께 보고드립니다’ 자료집의 제목이다. 지난 1년의 성과는 뭐니뭐니 해도 4·27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이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만남으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의 첫걸음을 떼고 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이어진 외교 노력의 결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 한반도평화를 위한 ‘베를린 구상’ 발표는 우리 주도로 남북관계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청와대는 또 ‘촛불정신’을 계승해 적폐청산에 속도를 냈다는 평가도 내놨다. 정부는 “국정농단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있으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142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라며 “공공기관 채용비리 등 생활 속 적폐도 근절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문제를 논의한 공론화위원회, 국민의 정책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광화문 1번가’와 ‘국민청원 게시판’ 역시 이번 정부의 성과로 꼽았다. 제주 4·3 사건이나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