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장관으로서 함량 미달이라는 지적이 대세이지만 그래도 하늘의 뜻이 있어 장관으로 임명되는 김영호 장관께서 꼭 유념해야 할 몇 가지 바람을 전하고 싶다. 극우 보수 인사인 신임 통일부장관이 추진하는 유연한 대북정책은 ‘국민적 합의’의 전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통일부의 정체성에 대한 바른 인식이다. 정부조직법상 본질적으로 통일부는 남북간의 대화와 교류협력 나아가 평화적 민족통합의 길을 모색하는 일을 해야 한다. 신임 장관이 역점을 두겠다는 북한 관련한 정보 분석 기능 강화와 북한 인권을 신장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통일부 성격상 상대방과 직접 상대하면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통일부가 직접 북한 인권문제를 다루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정부의 다른 기관이나 시민단체 등에 맡기면 된다고 본다. 정보분석 기능도 기존 국정원이나 국방부와 유기적인 업무협조로도 충분히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정책결정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고급 정보는 북한의 지도급 인사들과의 접촉과정에서 얻어 진다는 사실이다. 과거 남북대화에 나섰던 인사들의 경험이 중요한 이유다. 현재 북한이 지속적으로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면서 도발을 지속하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범도'를 탈고한 다음 나는 대한독립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작정했다. 역사를 바꾼 것은 세상을 바꾸려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꿈이고, 그 꿈을 위해 행동했던 사람들이 만든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사실을 ‘범도’를 쓰면서 더욱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자취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료를 찾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인물 한 명을 발견했다. 한국광복군 공작원 장이호다. 장이호는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신이다. 그가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간 해가 1936년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이었다. 조선 동포들이 많은 서주에 정착한 그는 평양냉면을 파는 ‘통일면옥’을 열었다. 성실하고 재간이 좋은 그의 냉면집은 장사가 잘되었다. 비밀활동을 하는 ‘전지공작대’와 ‘청년공작대’ 대원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통일면옥’은 독립운동의 비밀아지트가 되었고, ‘통일면옥’의 수익금은 독립자금으로 넘어갔다. 어느새 공작원이 된 장이호가 아예 정식으로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1구대 대원으로 입대한 것은 1944년이었다. 1944년은 일제가 연합국의 공세에 맞서 최후의 발악을 하던 시
해묵은 건국절 논란이 다시 부상하였다. 크게 1948년 8월 15일 건국설과 1919년 4월 11일 건국설이 대립한다. 전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상 국가성을 부정하고, 1948년 8월 15일에 비로소 유엔으로부터 정상 국가로 인정받았으므로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자는 전자에 대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국가적 주장이라고 비판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인 1919년 4월 11일이 건국일이라고 주장한다. 제헌헌법 전문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이라고 명문화하였고, 현행 헌법은 이를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수정하였다. 1919년 건국설은 이 문언들을 근거로 한다. 한편 제헌헌법 전문은 “단기 4281년, 단기 4287년” 등 단기를 연호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근거로 기원전 2,333년 10월 3일(개천절)을 건국일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여하튼 간에 헌법이 1948년 건국을 상정하고 있지 않음은 명백하다. 국가 존재의 의미는 시간성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는 과거, 현재, 미래의 상호
함흥남자라면 형부를 떠올린다. 농촌사람의 순박함이 묻어나는 듬직한 체구가 세련된 도시남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부모님이 언니와 결혼을 반대하니 속상한 형부는 어디가 그렇게 부족하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얼굴도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건 다 싫다고 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건강한 체격에 듬직한 뒤 모습만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로부터 형부는 얼굴은 마주하지 않되 가능한 뒤 모습을 많이 보이려 노력했다. 뒤 걸음으로 들어오는 웃긴 장면도 있다. 형부와 언니가 결혼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도시에 살고 있는 함흥남자는 ‘함흥얄개’란 말처럼 만만치 않다. 함경남도 소재지인 함흥에는 큼직한 행정기관과 공장기업소들이 맞물려 있어 생산품도 많다. 화학공업도시로 ‘고난의 행군’때에는 마약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각지에서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니 팍팍한 도시생활에서 손익계산에 빠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말도 빠른 함흥남자와 말이 느린 형부와 향유하는 문화수준도 차이가 난다. 형부는 명절이면 농촌의 작은 문화공간에서 소소한 활동을 하는 반면 도시에서는 함흥대극장 중심에 모여 화려하게 성대하게 문화생활을 한다
4년 만에 그녀가 한의원을 방문했다. 이전에는 혈압과 당뇨로 인해 내원했었는데 이번에는 팔목이 아프다. 몇 달 전에 우연히 넘어졌는데 팔목에 금이 갔고 한 달 가까이 깁스를 하고 얼마 전에 풀고 나서 일상에서 사용했더니 다시 붓는다. 시간이 지난 것에 비해 치료가 느려서 몸의 진단을 해보니 자율신경의 에너지와 심장 기능이 모두 저하되어 있다. 단지 팔이 다친 것이라고 하기는 4년 전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던 그녀를 떠올리니 의아하다. 그동안 좀 힘든 일이 있으셨어요 하고 물어보니 과연 최근 몇 년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물으니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원하시면 말씀하셔도 되어요 하니 남편이 갑자기 저세상으로 갔다는 말을 하면서 울먹이신다. 얼마 전 은퇴해서 시골에 집도 사놓고 가꾸면서 살자고 먼저 내려가 준비하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3년 전 쓰러졌다. 이제 애들도 다 키워놓고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일만 남았는데 먼저 가버린 남편이다. 워낙에 잘 웃고 밝은 표정의 그녀의 얼굴 속에 누구도 눈치채기 어려운 외로움과 쓸쓸함이 숨어있었다. 3년이 지났는데 최근까지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가 얼마 전부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아직 정말
청년 교사의 죽음 지난 주 20대 청년들의 사고와 안타까운 죽음이 전해졌다. 그 중 하나는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에 여러 무성한 추측들이 있고, 추모 열기 또한 뜨겁다. 겨우 2년 차에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사실에 대한 진상은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로 ‘마지막 시간’을 ‘학교’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교사로서 첫 출발을 하고 담임을 맡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초기 혼란에 대한 언론의 책임 그가 죽음의 공간으로 학교를 선택함으로써 개인을 넘어 사회적 의미로 확장되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고 더 안타까워하는 듯하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전에 소셜미디어에서는 ‘힘’ 있는 누군가가 언론 보도를 막고 있다고 하고, 도를 넘은 학부모들의 갑질이 그 원인일 것이라는 말들이 있었다. 사실 여부를 알기 어려운 확실하지 않은 정보들이 난무했다. 언론이 취재를 통해 제대로 확인한 정보를 보도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사실과 비(非)사실이 섞이게 마련이다. ‘자살 보도 준칙’이나 ‘2차 가해’에 대한 우려 등이 그 이유일 수 있으나
일신상의 문제로 인해 군에 입대를 하는 대신 관이나 공공기관에서 군 복무를 대신하는 인원을 사회복무요원 또는 공익이라고 부른다. 사회복무요원은 기초군사 훈련을 마치고 민간인 신분으로 다양한 기관에서 공익목적의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건강의 이유로 인해 징병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은 젊은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의무인 병역을 대체하기 위해 복무를 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들의 근무지 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는 소집대기자가 복무기관 자리수 보다 많기 때문이다. 성일종 의원이 병무청으로 제출 받은 자료에 의하면 2018년 기준, 소지대기자는 5만 8천명인데 복무기관 자리수는 3만 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통계 수치는 2019년 이후 2022년까지 소집대기자가 복무기관 자리수보다 훨씬 많다. 이러다보니 복무지를 배정 받기 위해 대기하는 젊은이는 계속 적체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진 소집대기자는 통상 3년이 지나면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고 병역이 면제되는데 매년 1만명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소집대기자가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기까지 기다리는 동안에는 유령처럼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도깨비, 응답하라1988, 이상한변호사우영우, 모범택시 등. 내가 본방사수한 드라마다. 요즘엔 몰아볼수 있어 본방사수가 별 의미 없지만 재미있으면 몰입한다는 말이다. 어떤 경우라도 재미없는 드라마는 안본다. 내용이 건전하고 좋은 메시지 전달한다고 재미없는걸 보지는 않는다. 재미와 시청률은 드라마 생존의 기본이다. 오로라공주, 아내의유혹, 왔다장보리, 조강지처클럽, 임성한, 김순옥 등. 소위 유명세를 탔던 막장드라마와 대표적 작가다. 막장이라 비난하지만 아무나 못쓴다. 막장이어도 시청률이 담보되었기에 이 작가들이 살아남은거다. 각자 시청률 20% 이상씩은 항상 들고 다녔다.그래도 욕은 먹는다. 욕하면서도 드라마는 또 본다. 막장드라마란 말이 우리사회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중반쯤이다. 임성한의 일일연속극 등이 이말의 생성에 기여했다. 김순옥의 아내의유혹(2008)이 막장드라마에 마지막 점을 찍고. 통상 일반적 상식이나 도덕기준으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자극적이고 이야기 흐름이 개연성 없이 전개되는 드라마를 말한다. 불륜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이를 응징, 복수하는 과정에 기억상실증, 출생의 비밀, 극단적 고부갈등, 재벌가와의 관련 등이 적당히 조
피묻은 1500개 소뼈 더미 위에 흰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있다. 소뼈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닦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끊임없이 유고슬라비아의 민요가 흘러나온다. 흰 드레스의 여인은 세르비아의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이고 이 작품은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장을 거머쥔, ‘발칸 바로크(Balkan Baroque)’. 4일간 이뤄진 이 퍼포먼스는 90년대 발칸반도의 보스니아 내전 학살을 고발하는 행위였다. 그 충격적 퍼포먼스와 함께 기억에 남은 그녀의 인터뷰.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을 때 ‘세르비아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세르비아인이면서 세르비아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단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어디일까. 소뼈를 닦으며 부른 노래를 주목한다. 유고슬라비아 민요. 지구상에서 사라진 나라 유고슬라비아. 백년도 못 채우고 사라진 유고슬라비아의 흥망사는 발칸반도 비극의 상징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신생국가들이 생겨난다. 발칸반도에서는 세르비아가 주도권을 잡아 이웃나라들을 흡수, 연합국을 세우는데 그 이름이 ‘유고슬라비아 왕국’이었다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젊은 여교사의 극단적인 선택. 쉬쉬해왔던 학부모의 갑질이 불거진 사건이다. 어디 서초동, 교사에게 뿐 만일까? 우리 사회 갑질은 직장, 농촌, 학교, 백화점, 아파트, 식당…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대기업 총수 혹은, 재벌 2, 3세의 폭행에서부터 간호사의 태움 문화, 밀어내기 갑질, 학폭에 이르기까지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사건은 하나둘이 아니다. “나 뭐하는지 알지? 변호사야”. 서이초교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갑질 발언이다. 무엇이 그리 대단하기에, 알량한 직업을 내세우고, 자기 자녀의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이번 사건으로 교권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일리 있어 보이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닐까? 근본 원인은 우리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삐뚤어지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를 긍정적으로 흘러가게 하는 소중한 의미를 함의한다. 사회 구성원 간 신뢰와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결합하고 연결하는 게 사회 자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사회자본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여 진다. 법조인이라는 특정집단의 우월의식이 부정적 동질성으로 확대 재생산됨으로써 젊은 여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