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만발하다. 꽃구경을 즐기기 위해 거리에는 인파들이 모이고,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설레는 마음이 총총 실려 있다. 언젠가 벚꽃들은 슬픔 속에서 고요하면서도 찬연하게 만개를 했었다. 하지만 그사이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아픔과 슬픔이 분노로 바뀌기도 했고, 지나간 세월이 어느덧 치유해놓은 곳들도 있으며, 더는 자극이 되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다져진 부분도 생겼다. 물론 아직도 분노와 혼돈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있고, 그러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봄바람과 함께 살랑거리는 마음도 있다. 벚꽃이 피는 풍경은 매해 그 모습을 바꾼다. 꽃잎이 점점이 흐드러져 있는 모습은 화가의 붓 터치를 연상하게도 한다. 특히 한 그루의 나무가 그 속에 에너지를 축적해 놓았다가 어느 순간 꽃망울을 터뜨리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회화가 선사했던, 그 신선하고 순수한 에너지가 떠오른다. 색채가 인간의 영혼의 깊숙한 곳까지 가 닿아 심연을 요동시키는 운동력이 있다고 믿었던 칸딘스키는 꽃이 만발하듯 색이 만발하는 생기발랄한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였었다. 그러한 칸딘스키의 색채 표현은 당시에는 매우 참신한 것이
달 항아리 속의 고양이 /최춘희 새로 돋은 이빨이 간지러운지 벽을 긁다가 서재 꼭대기 뛰어올라 슬며시 아래를 훔쳐보다 달 항아리 속에 들어가 잠든 애기 고양이 가르릉 소리를 내며 구만리 꿈길 돌고 돌아 젖도 못 떼고 생이별한 어미와 상봉 중이다 온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아 웅크린 채 포근한 구름 수레에 실려 응석받이로 안겨 있네 쏟아질 듯 흘러넘치는 기분 좋은 햇살의 무량함이 체한 듯 둔중한 가슴을 씻겨주네 - 최춘희 시집 ‘초록이 아프다고 말했다’ / 2018 이제 막 이빨이 나기 시작한 애기 고양이가 달 항아리 속에 들어가 한정 없이 쏟아지는 햇살을 이기지 못하고 최대한 몸을 말아 잠에 든 모습. 젖도 못 떼고 어미와 헤어졌지만 어쩌겠는가. 한 끼의 장면을 덮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시간들이 한없이 밀려오고 있다. 나의 안쓰러움과 애기 고양이의 두려움이 교차하는 봄날, 눈부신 햇살과 대조되어 극명하게 다가온다. 애기 고양이가 어떻게 서재까지 오게 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길거리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어서 안심이 된다. 저 어린 생명을 거두어준 손길이 없었다면, 여린 생명에 대한 경외가 없었다면 우리 곁에서 꽃 한 송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온 국민을 울린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쯤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바다에서 전복돼 침몰했다. 배는 금방 가라앉지 않고 이틀 동안이나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배에 그대로 있으라’는 잘못된 정보가 방송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지켜보는 사람들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해경을 비롯한 당국이 손을 쓰지 못하고 결국 탑승객 476명 가운데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돼 온 나라는 통곡의 장으로 변했다. 특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4명 중에 희생자가 많이 나옴에 따라 지켜보던 사람들의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고를 겪은 시민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철저한 사고조사와 원인 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후 5년간 주체를 바꿔가며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국민이 납득할만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사고 직후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침몰원인으로 급격한 진행 방향 변경과 화물 과적, 고박 불량, 무리한 선체 증축 등을 지목했다. 2015년 1월에는 세월호 1기 특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지 100주년이 된 해이지만 한편으론 3·1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지 100년을 맞는 해다. 일제의 강압 통치로부터 벗어난 지도 74년이 흘렀다.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나라엔 매국노 친일파 후손들이 득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활과 문화 곳곳에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깊고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이에 경기도는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언어 속 일제잔재 청산도 추진하기로 했다. 도는 아직도 공문서 등에 일제잔재 표현과 관행들이 많이 남아있다며 “민간기관과 국어학자 등 전문가와 추진단을 구성해 일본식 표현을 전수조사하고, 순화어 100개를 발표해 보급하는 등 언어 속 일제잔재 청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도는 추진단을 구성, 5월부터 잔재 청산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관료 조직 곳곳에 지금도 잔재는 버젓이 남아 있다. ‘징구(徵求)’, ‘~에 의거’ ‘만전을 기해’ ‘행락철 도래’ ‘공람’ 등 행정용어와, ‘주사’, ‘서기’ 등 직급명칭은 일제 강점기 시절과 달라지지 않았다. 교육계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훈시·훈화’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 국민의 대변자라는 국회의원도 함부로 일본
한국 사회에서는 의사가 “당신은 지금 알코올 중독 상태입니다”라고 진단을 내려도 쉬 수용하지 않는다. 대부분 “이 정도 안마시고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느냐?” 반문한다. 현대인은 상당수가 일중독 상태임에도 역시 “지금처럼 치한 경쟁사회에서 이 정도 일 안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 반문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집단적인 일 중독증 상태에 빠져 있으며 그러한 일 중독증의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마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신과전문의 이홍식 교수는 “일중독증은 업무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병리현상을 일컫는 말로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사회적 성인병”이라고 설명했다. 일중독증은 알콜중독이나 약물중독처럼 증상이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일을 너무 많이 하거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신체에 질병이 생기거나 지방발령을 받는 등 특정한 계기가 발생하면 기력을 상실하고 탈진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경우 환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점점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런 행동을 보이다가 가족이나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지난 8일 미국에서 숙환인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로 우리나라 남자의 기대수명은 79.7세, 여자는 85.7세(2017년 기준) 보다 10살 가량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스티브 잡스는 전략적인 인물이었다. 디지털 생태계를 바꿔 놓은 그의 전략은 아날로그 시대의 종언과 디지털 패러다임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그리 전략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아쉽기만 하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자 세상을 뒤흔들어 놓은 영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니 그 아쉬움은 짙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건강관리도 비즈니스나 정치의 전략만큼이나 중요하다. 열심히 땀을 흘려 운동을 한다고 건강관리가 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체형이나 조건에 맞춘 운동을 해야 효과가 있다. 또 일상은 엉망인 상태에서 운동만 한다는 것은 건강 관리는 커녕 자칫 몸을 망칠 공산이 크다. 그래서 건강관리도 전략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건강관리전략의 핵심은 ‘규칙’과 ‘절제’ 그리고 ‘습관’과 ‘실천’이다. ‘규칙’은 수면과 식사, 운동과 휴식 등이다. 잠자는 것이 불규칙하면 늘 피곤하다. 휴일을 맞아 푹 잔다고 해서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식사
…
광어와 도다리, 생김새는 납작한 것이 둘이 닮았다. 하지만 다르다. 구별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광어 눈은 왼쪽, 도다리 눈은 오른쪽에 쏠려 있다. ‘좌광 우도’로 기억하면 된다. 이중 광어는 ‘자산어보’에서는 ‘넙치 접’자를 써 ‘접어’로 소개하고 있다. ‘본초강목’에는 나라를 상징하는 물고기로 기록돼 있다. 사실 광어는 사투리다. 넙치가 표준말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광어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리면서 광어도 표준말로 대접받게 됐다. 넙치라는 이름은 넓적한 생김새에서 파생된 말이며 광어는 廣(넓을 광)자에 魚(물고기 어)자를 붙여 만들어졌다. 광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횟감 중 하나이다. 고기 맛이 좋은데다 대량 양식에 성공하면서 대중화된 결과이다. 그런데 광어회를 좋아하기는 북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당시 생포된 승조원은 체포 후 심문과정에서 심경의 변화를 알리며 첫 소감을 ‘광어회가 먹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 였다니 말이다. 또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피살당한 김정남도 일본에선 참치회보다 광어회만 즐긴 광팬으로 전해진다. 1980년대 양식에 성공한 후 지금이야 어시장과 횟짐 수족관에 널
벚꽃 만발한 4월이 달리고 있다. 내리 천 어귀를 개나리로 물들이고, 풋풋한 봄바람 흩뿌리며 다닥다닥 제비꽃으로 잔디밭을 살찌운다. 방 안을 전전하던 노인들을 불러내고 이내 봄비에 벚꽃 잎 훌훌 털어낼 4월. 자전거를 몰고 나온 어린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을 태우고 길 건너 아산호로 둥둥 떠가는 저 새털구름. 이런 풍경들 또한 4월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흔히 자화상이라 하면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물론 그림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릴 수도 있겠지만 소신이나 신념으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그려가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주말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하는 예술의전당서예박물관을 갔었다.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특별히 개최되는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 自畵像-나를 보다’라는 전시회. 그곳에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서화, 서예,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각 개인의 삶이 드러나는 자화상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자화상 또한 동시에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하얼빈 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사의…
셰익스피어는 한숨을 쉬고 있는 청소부에게 말했다. “그대 친구여, 한탄하지 마시오. 그대는 지금 신(神)이 지어 놓으신 이 세계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하고 있는 것이라오” 이야기(story)도 어쩌면 마음 한 모퉁이에 쌓여있던 세상의 찌꺼기를 청량하게 씻겨주는 빗자루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가끔 어린 시절 이야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어린이집에 ‘이야기 아줌마’가 커다란 그림책을 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오셨는데 지금으로 치면 ‘동화 구연가’였다. 누군가 “이야기 아줌마 오신다!”라고 크게 외치면 우리들은 맨 앞줄에 앉으려고 후다닥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야기 아줌마가 자리를 잡으면 우리들은 꽃잎 같은 작은 손으로 손뼉을 치며 제비 같은 입으로 동요를 불렀다. 부엉 부엉새가 우는 데 / 부엉 춥다고서 우는 데 / 우리들은 어린이집에 /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 옛날 이야기를 듣지요. 노래가 끝나면 드디어 마법의 주문이 걸린다. “옛날 옛날에 토끼와 호랑이와 살았는데…” 우리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 이야기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