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일요일 북한 땅이 마주 건너다 보이는 자유로 길목의 소나무에 노란 손수건 수백장이 마치 흐드러지게 핀 꽃송이처럼 매달려 보는 이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18년 전인 1987년 1월 42세의 생떼같이 젊은 나이에 납북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 그의 딸 우영(35)씨가 아버지의 회갑을 사흘 앞두고 임진각 부근 자유로의 소나무에 매단 이 노란 손수건 400장에는 송이송이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안타까움과 무사귀환의 간절한 소망이 절절하게 배어 있었다.
과연 어떤 시(詩)가, 어떤 노래가 이 노란 손수건보다 더 가슴을 적시며, 그리움과 기다림과 안타까움을 간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가족만큼 소중하고 귀한 것은 없다. 그 혈육의 가정이 이데올로기의 폭력과 강제에 의해 찢기고 파괴된 채, 끌려간 가족의 소식은커녕 생사조차 불분명한 가운데 18년의 세월을 애를 태우며 속절없이 기다려 왔다.
그리고 그 하염없는 기다림과 안타까움은 앞으로 또 얼마나 더 긴 세월로 이어질지 기약이 없다.
노란 손수건은, 출옥을 앞둔 장기수의 아내가 아직도 변함없이 남편을 사랑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표시로 마을 입구의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 놓았다는 1900년대 초 미국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와 팝송에서 유래한 것으로, ‘무사귀환’을 상징한다. 이같은 미국의 실화가 오늘의 한국 땅에서 내용을 달리 한 채 가슴아픈 사연으로 재연된 셈이다.
이 애절한 노란 손수건이 지금 임진강변 소나무에만 너풀거리고 있겠는가. 이 땅의 수많은 납북자 가족들 마음 속에도 간절한 소망을 담은 수백개 수천개의 노란 손수건들이 피를 토하듯 나부끼고 있을 것이다. 1955년부터 2000년까지 납북됐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모두 48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가운데 생사가 확인된 사람은 10여명에 불과하다.
북한이 미전향 장기수 송환을 남북협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성사시킨 반면, 우리 정부가 생존한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문제에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시늉만 하지말고 납북자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리하여 자유로의 노란 손수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납북자들을 환영하는 상징물로 나부낄 날을 앞당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