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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이명수 경기향토사학회부회장

‘나라는 갈팡질팡 어지러운데 뉘라서 나라건질 충신이 될 꼬 한양(서울)을 떠남은 큰 계획이 있음이요, 회복은 그대들에게 달려있나니 국경이라 달 아래 소리쳐 울고 압록강 강바람에 마음이 상하네. 산하들아 오늘이 지난 뒤에도 또다시 동서(與野)로 나누어 싸우려느냐.’
임진왜란(1592~1598)으로 서울을 빼앗기고 의병장 정문부(鄭文孚)장군은 함경북도 길주 단천 등에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치열한 전투를 치룰 때 조선조 14대왕(1552~1608) 선조임금이 북쪽의 땅 끝인 의주(압록강변의 신의주)까지 피난길에 닿아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고 신하들을 원망하며 지은 시조(時調)이다. 왜적의 임진왜란은 무방비상태에서 조선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전쟁 20일 만에 한양(서울)을 빼앗겼으니 조선에게 왜란은 얼마나 치명적이고 절망적인 난리 이었겠는가. 나라는 위태로운데 붕당정치는 정치세력들 간에 파당으로 이어지고 나라는 점점 왜세에 밀려 서산으로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때에 가진 것도 없이 나타난 이가 있으니 그 분이 곧 의병장 정문부 장군인 것이다. 선조의 시조를 대하고 보니 어쩌면 지금의 정치 현주소와 닮아 가는 것 같아 첫 추위를 느끼는 이 가을에 가슴이 아파온다.
그러나 정문부 의병장은 400년전 온 몸으로 이 땅을 지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백성들을 모아 열심히 싸워 육지에서는 처음으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정문부와 함께한 의병의 수가 6천명이 넘었고 그 기개로 2만2천명의 일본군을 이긴 것이다.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해주정씨 정문부 의병장이 창설한 지휘부대의 의병들이 승리한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문에 조선국 함경도 임진의병대첩비(朝鮮國咸鏡道壬辰義兵大捷碑)라는 공식 명칭을 가진 이 비는 숙종(33년)때인 1708년 함경도 북평사(北評事)로 부임한 최창대(崔昌大:1669~1720)가 글을 짓고 이명필(李明弼)이 글씨를 써서 주민의 뜻을 모아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臨溟)에 건립했던 것이다.
비는 반환시 높이 187cm 너비 66cm 두께가 13cm였다. 비는 러일전쟁(1904~1905)중 이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 제2예비사단 이케다 마시스케(池田正介)소장이 발견하였고 미요시 중장이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자기 조상들의 패전기록을 기분 나쁘게 여겨 일본으로 운반해 간 것이다.
그 후 일본 황실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로 옮긴 후 그 비석을 일본 후지산을 닮은 버섯모양의 무거운 돌로 짓눌러 놨던 것으로 봐서 일본을 떠받치고 있던 잡귀신들에게 조선 의병장의 혼을 바치고자 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의 명산에 쇠를 박아 혈을 끊어 놓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우리에게 운이 닿은 것은 1978년 도쿄(東京)에 있는 한국 연구원장 최서면(崔書勉)이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비를 발견한 것이다. 이후 한국정부와 민간단체 및 불교계에서 수차례 비의 반환을 요청하였으나 남북한 정부 차원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일본정부의 주장에 의해 반환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6월 남한과 북한이 비 반환에 대해 협의하고 일본정부에 반환을 요청함에 따라 일본정부로부터 100년 만에 북관대첩비가 역경의 세월을 이겨내고 10월 20일 오후 4시 2분 고국의 품으로 안기게 되었다.
북관대첩비가 고국에 돌아왔음을 알리는 고유(告由)제가 21일에 올려지고 국립중앙박물관이 때를 맞추어 28일 개관됐다.
비는 앞으로 국민들에게 공개된 후 새해가 밝아 오는 3.1절이나 8.15 광복절을 기해 꿈에도 그리던 함경북도 길주의 원래 있던 자리에 보존 하기 위해 북한으로 보내지게 된다.
이번 북관대첩비의 귀향은 남과 북의 공동으로 한마음 한뜻이 되어 찾아 왔듯이 분단의 철조망도 함께 걷어버리고 우리 남과 북의 이산가족도 하루 빨리 만날 수 있도록 찾아 주어야 한다. 우리는 북관대첩비를 잘 보존하고 지표로 삼아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치욕적인 실수를 되풀이 말아야 할 것이다.
신라의 자장 율사는 ‘나라가 강하면 작대기로 금을 그어 놓아도 적군이 못 넘어 오지만 나라가 허약하면 만리장성을 쌓아 놓아도 적군은 넘어 온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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