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이혼으로 외조부모집에서 지내던 경기도 의왕의 아홉 살짜리 초등학교 3학년 소년이 극도의 외로움 속에서 개에게 물려 숨진 사건은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민다.
이혼한 부모로부터 버려져서 외갓집으로 보내졌지만 외조부모는 먼 시골을 오가며 농사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고 추수를 위해 집을 오래 비워야 했다.
소년은 살림집을 겸한 비닐하우스에서 참혹한 모습으로 숨졌다. 소년의 죽음이 유달리 안타까운 까닭은 사고가 비참했다거나 피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이 어린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도사견이 아니라 부모의 이혼, 가족해체, 가난과 사회적 소외였다.
소년의 죽음을 흔한 사회적 비극의 하나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를 죽도록 방치했다는 ‘공범의식’ 때문이다.
굳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묻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그럴지라도 그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를 물어야만 한다.
아이를 버려둘 마음은 없었겠으나 끝내는 버리고만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사회의 무엇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또다른 수많은 어린이들이 비슷한 처지에서 버려지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우선, 이혼은 당사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그것은 부부만의 문제이기 이전에 아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누구나 행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그 행복을 위해 이혼할 권리도 있다. 그러나 자녀들도 행복할 권리는 있다.
부부 중심의 일방적인 선택에 희생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오늘의 상황은 ‘책임’이 실종된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세태를 대변한다.
수많은 아이들을 고통과 위험으로 몰아가는 가장 큰 책임은 ‘가족해체’에 있겠으나, 과연 사회는 할 일을 했는가.
정부는 아동학대예방센터와 가정위탁지원센터라는 안전망을 만들고 ‘희망의 전화’를 개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웃이 없었고 구조체계가 허술하다.
당국은 출산율 높이기에만 애쓸 게 아니라 태어난 어린이들부터 잘 지킬 수 있는 정책을 우선적으로 펼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