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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개방된‘명릉’의 가치

정동일 고양시 문화재 전문위원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위치한 서오릉의 명릉(明陵)이 전면 개방돼 34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 왔다. 현재 사적 제198호로 지정돼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있는 서오릉은 총 면적이 70여만평으로, 동구릉 다음으로 큰 면적을 가진 유명한 능역이다.
이곳 서오릉에 처음으로 능역이 만들어진 것은 조선조 7대 세조의 아들인 덕종(추존 왕)이 20세에 왕세자의 자리에서 돌아가자 그 능을 이곳 서오릉 경릉에 사용하면서부터 였다. 이곳 서오릉에는 이 경릉 이외에도 창릉(예종과 그 비 안순왕후) 홍릉(영조 비 정성왕후) 익릉(숙종 비 인경왕후), 경릉, 명릉 이 다섯 기의 능이 있으며 이외에도 장희빈으로 알려진 대빈 묘소와 수경원, 순창원이 능역 내에 포함되어 있다.
이 다섯의 능역 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고 특이한 능상 배치 등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 바로 명릉이다. 명릉은 조선조 후기 제 19대 숙종과 그의 계비 였던 인현왕후와 제 2계비인 인원왕후를 모신 곳이다. 명릉은 서오릉의 맨 앞쪽에 있고 밖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서오릉의 상징과 같은 능이었으나 그동안 군 보안상의 이유로 일반의 출입이 통제된 비공개 능역이었다. 이 명릉이 고양시의 계속된 개방 요구와 문화재청, 군 당국의 협의로 전면 개방되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렵게 개방된 이곳 서오릉의 명릉은 몇가지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여러 능역 중에서 그 크기가 가장 작은 석물(石物)이 배치돼 있다는 점이다. 다른 능의 경우 무인석의 크기가 대개 3m에 이르는 대형이나 명릉은 1.7m를 넘지 않는다.
또 우리나라 조선시대 왕릉 조성의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능역이다. 명릉의 주인공인 숙종은 조선조 영조 다음으로 장기간 재위함으로써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 결과 명릉의 여러 조각 수법이나 왕릉 조성 방식이 전기의 제도와 후기의 능 제도에 한획을 긋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와함께 특이한 왕릉 배치 방법을 들 수 있다. 이 능은 숙종이 제1왕비가 아닌 계비와 제2계비와 함께 하나의 능역을 이루고 있으며 인원왕후의 경우 숙종의 뒤편에 자리하고 그 좌향(방향)을 서향으로 자리한 특이한 배치 방법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능상 위의 여러 석물과 난간석 등을 자세히 보면 그 금석문적 가치가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무인석의 귀면이나 옷의 무늬, 얼굴의 세밀함, 생동감 넘치는 조각 수법은 과히 뛰어난 당대 최고의 장인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이외에도 반석, 난간주두, 동자석주, 석호 , 혼유귀면 등의 예술적 가치는 다른 능역과 확연히 구분되며 다른 능과는 달리 무덤 바로 앞 지점인 능상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34년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명릉. 이제 소중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후대에 길이 보전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한 무덤의 개방이라는 의미 보다 살아있는 왕릉의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는 해설사의 배치와 함께 왕릉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이루어져 진정으로 우리 가까이에 있는 역사교육의 현장 명릉으로 남아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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