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흔히 물질만능(物質萬能)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질 사회에서 개인이 개인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개인은 부자로서나 가난한 사람으로서 일생을 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일생을 산다. 바로 이 점을 확실히 깨닫고 나면, ‘부’니 ‘가난’이니 하는 것은 개인의 사람됨보다 그렇게 큰 비중을 못 가지는 것을 알게 되고,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러한 빈부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돈이 많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사람은 누구나, 부자건 가난뱅이건, 정상인이건 장애자건, 사람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그 됨됨이가 온전한 사람이기 위해서는 돈이라든가 신체적 조건이라든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어떤 다른 결정적인 것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이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70평생 동안 내내 남루한 옷을 걸치고 맨발로 살면서 참다운 진리와 도덕을 설파(說破)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물질적, 경제적 사항들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영혼을 소중히 돌보는 일, 즉 ‘지혜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에만 전념했다. 지혜는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지 물질에 있지 않다고 그는 굳게 믿고 실천한 사람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이와 같은 이야기는 현대 물질만능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 살면서, 소크라테스와 같이 정신적 내면생활에만 충실하고 물질적 요구에 대해서는 등한시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물론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도, 여전히 한 인간의 생애의 값어치는, 그가 누렸던 물질적 영화(榮華)에 있지 않고 얼마나 자신의 정신적 세계를 많이, 그리고 깊이 가꾸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고귀한 존재이다. 그러나 같은 인간이라 해도 ‘더 고귀한’ 인간이 있다. 바로 자신의 정신과 영혼의 세계를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인간이 자신의 영혼, 즉 마음을 돌본다는 것은 인간의 관심을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것으로 돌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사리사욕(私利私慾)과 편견(偏見) 등 부정적인 것들을 우리의 내부로부터 깨끗이 청소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생각, 이것은 결코 나의 외부를 구성하고 있는 지위나 부(富)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나의 의식을 확립했을 때, 다시 말하면 내가 나의 영혼을 확인하고 그것을 소중히 가꾸려는 의식이 생길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 저리 허둥대며 쫓기는 일 없이, 온 세상이라도 포용할 만한 크고 따사로운 마음을 지니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생활이야말로 참으로 고귀한 삶을 사는 인간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