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복면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살상무기를 휘두르며 공권력을 습격하는 폭력시위대 앞에서 진압경찰이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구는 오로지 방패와 진압복밖에 없다.
지금 이 땅의 거의 대부분의 시위현장은 시위가 아니라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시위의 강도가 높아야 주장하는 바가 쉽게 사회적 주목을 받아 여론화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폭력시위는 대게 다수의 온건시위대를 소수의 ‘직업 시위꾼’들이 선동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들 폭력시위 전문가들은 쇠파이프와 죽창과 돌맹이와 각목도 모자라 변형 사제총까지 동원하는가 하면 휘발성 기름을 진압경찰에 뿌리고 화염병을 터뜨림으로써 불을 지르기도 한다.
이로 인해 화염에 휩싸여 뒹굴다가 심한 화상을 입고 목숨을 잃거나 평생 불구가 되는 전·의경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미 ‘폭력시위’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그 목적이 의심되는 ‘폭동’이요 ‘혁명전쟁’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폭력 시위대의 시위를 진압하는 전·의경의 진압복에 명찰을 달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경찰이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고 이름없는 진압복 차림으로 진압작전을 펴다 보니 쉽게 과격진압으로 쏠리게 된다. 책임감 있는 시위 진압이 이뤄지도록 명찰을 부착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요구를 경찰이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런 방안을 ‘묘안’이라고 내놓은 시민단체의 의식수준이 한심스럽고 어처구니없지만, 이를 받아들인 경찰청 상층부 역시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안팎으로 몰리고 있는 경찰의 처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경찰의 과잉진압은 불법 폭력시위에 따른 불가피한 대응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태의 본질은 시위진압 전·의경의 명찰 패용과 같은 엉뚱한 대책에 있는 게 아니다. 불법 폭력시위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불법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에게 더 이상 폭력으로는 그들이 요구하는 목적을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고, 불법 폭력시위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법의 단호한 응징을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압경찰에게 명찰을 달도록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시위대가 이름표를 달도록 하고 이같은 규정을 집시법에 명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