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에 희망이 있는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고민하고 있거나 고민했을 문제이다. 불행하게도 점점 더 많은 국민들이 희망이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조기 유학 혹은 ‘기러기 아빠’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외로 눈 돌릴 경제적 능력조차 없는 저소득층이 교육에 희망을 잃고 저학력의 대물림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왜 교육에 희망을 잃고 있는가? 우리 국민이 교육에 투자하는 재원과 교육에 쏟는 열의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 제도와 정책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하지 못하고 교육 개혁이 표류하는데 있다. 개혁을 할 때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정책수단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낸 후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개혁의 목표 설정부터 잘못됐다. 어느 나라에서나 교육 개혁의 목표는 ‘좋은 학교 만들기’일 것이고 또 그렇게 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교육개혁의 최우선 목표는 ‘교육고통의 해소’였다. 학생들의 지나친 입시 경쟁의 폐해와 이에 따른 과외비 부담을 경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 설정은 국민으로부터 정치적 인기를 단기간 얻을지 몰라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인기영합(populism)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육 고통의 해소’가 개혁의 최우선 목표가 되면서 학교(대학을 포함해)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좋은 학교 만들기’라는 교육개혁의 진정한 목표가 실종됐다.
자립형 사립학교 제도를 도입하는 개혁방안이 지난 1995년 제시된 이후 아직도 6개교 시범실시에 머물고 있는 것도 이 방안을 통해 비록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이들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교육 고통’이 증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학교 만들기는 반드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만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학교에 비해 뒤쳐지고 있는 학교를 끌어올리는 것도 좋은 학교 만들기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아이들의 학력을 평가하고 학교 간의 교육 격차를 밝혀야만 하는데, 이러한 개혁 방안이 학교를 서열화 시키고 더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교육 고통을 부추긴다고 저지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열이 어느 나라보다도 높으니까 좋은 학교를 만들면 여기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에 따른 입시 및 과외의 고통이 커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모든 학교를 한꺼번에 똑 같이 좋은 학교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룰 수 없는 환상이다. 우리가 실업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좋은 직장’을 많이 만들겠다는 정책목표를 설정해야지 모든 직장의 임금 수준을 동일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교육개혁의 목표를 ‘좋은 학교 만들기’로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학교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교육 고통의 증대는 일시적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학교가 소수에 지나지 않을 때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 교육 고통을 오히려 증대시킬 수도 있지만 이런 학교들이 점점 더 확산되어 간다면 이들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고통도 점진적으로 그러나 확실히 완화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