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카톨릭교회는 1969년 김수환 추기경 서임에 이어 정진석 추기경이 새로 탄생하여 2명의 추기경 시대가 열렸다. 이는 450만 신자의 한국 카톨릭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한국종교의 영적 중흥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정진석 추기경이 탄생하는 순간 로마 교황청에는 8000여명의 참배객이 몰려 있었고, 이 가운데 한국 종교 간 화합과 일치의 상징인 삼소회(三笑會-불교 비구니,원불교 교무,카톨릭·성공회 수녀의 모임)회원 들이 맨 앞자리에서 추기경의 탄생을 함께 경축했다.
아직도 세계는 종교간 대립과 충돌이 쉬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은 국교가 없는 다종교의 공존과 화해가 이루어 지고 있다, 또한 카톨릭의 추기경은 한 종교의 지도자 일뿐 아니라 국가의 정신적 원로로서 이 사회의 사랑과 국민통합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지난 37년간 우리가 산업화-민주화로 발전해 오는 진통 속에 김수환 추기경이 보여준 정신적 지도력은 온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 이제 노령의 김 추기경에 이어 또 한분의 추기경이 된 정진석 교구장에 대한 존경과 축복이 각계의 한 목소리로 나왔다.
지금까지 김수환 추기경이 군사독재와 민중적 선동에 대하여 자제와 관용으로 나가도록 인도했다면 정진석 추기경은 자유와 인권 없이 죽어가는 북한동포에게 구원의 등불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정 추기경은 북한동포의 참상과 종교의 자유복원에 항상 고뇌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추기경은 추기경이 된 직후 첫 미사에서 “서울교구장과 평양교구장을 겸한 제가 추기경에 임명된 것은 서울과 평양을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이라”이라고 강조하고 “북한의 동포들은 식량도 없고 종교의 자유도 없는 상황이라”며 “하느님이 자비를 베푸셔서 하루속히 북한주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해방 당시 5만 여명의 신자와 50여 곳의 성당·수도원을 가지고 있던 북한의 카톨릭은 현재는 신자도 성당도 사라진 채 종교선전을 위한 장충성당이란 하나의 시설이 있을 뿐이다. 북한주민의 자유와 인권은 종교의 자유를 회복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정 추기경의 새로운 지도력을 중심으로 한국의 종교단체가 상호협력으로 북한 자유화운동에 앞장서 나갈 것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