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던 북한이 이들에 대한 존재를 처음으로 인정하고 생사확인에 나서기로 했다. 남북한은 지난 23일 금강산에서 열린 제7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한 7개항의 합의서를 채택했다.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생사확인을 이산가족 상봉에 따른 생사확인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북한의 ‘기존방식 고수’는 다소 아쉬운 대목이지만, 어떻든 북한이 국군포로와 납북자 존재를 인정하고 문제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설 뜻을 나타내기까지는 반세기의 세월이 걸렸다.
이번 합의는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북한이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정하고 생사확인에 나서기로 한 것은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 이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남북한이 함께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전쟁 당시 북으로 끌려간 국군포로는 8만 여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가 유엔에 제출한 ‘휴전에 관한 특별보고서’에 의하면 북으로 끌려간 한국군 포로는 8만2천318명으로 집계돼 있다. 90년 중국 정부가 펴낸 ‘한국전사’에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에 포로로 붙잡힌 한국군 숫자만도 3만7천815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군에 포로가 된 국군의 수를 합하면 북으로 끌려간 국군포로는 도합 8~9만명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 가운데에서 북한은 1953년 포로교환 당시 8천726명만 돌려보내고 더 이상의 국군포로는 없다고 잡아땠다. 7만여명이 넘는 국군포로가 돌아오지 못하고 북에 억류된 것이다. 그리고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우리 측에서는 포로교환 당시 북한군 포로 7만6천119명과 중공군 포로 7천139명을 모두 북측에 돌려보냈었다.
북녘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은 대부분 탄광 막장 등에서 노역에 시달리다 질병과 영양실조로 사망했거나 고령으로 세상을 하직했고, 생존자는 60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국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대한민국은 국군포로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그리고 생존 국군포로들이 더 늦기 전에 고향땅을 밟고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조국이 해야 할 기본적인 도리이자 의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