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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美 삽화가 허쉬필드 사망

찰리 채플린에서부터 현대 브로드웨이 스타들에 이르기까지 당대 인기 스타들을 품위있고 우아한 필치로 그려냈던 삽화가 앨 허쉬필드 화백이 20일 자택에서 영면했다고 CNN 방송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향년 99세.
고인은 사망할 때까지 뉴욕타임스에서 70년 이상을 예술섹션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만화를 그려왔다. 그는 항상 뉴욕 맨해튼 동쪽에 위치한 자신의 5층 건물 꼭대기층에서 1954년 구입한 이발소 의자에 앉아 홀로 일했다.
고인은 지난 2001년 12월에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그리고 있는 것이 과거 어느때 그렸던 것보다 항상 으뜸"이라며 "나는 오직 현재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허쉬필드 화백은 딸의 이름이기도 한 `니나'라는 단어를 자신의 삽화에 숨겨 독자들에게 심심풀이로 이를 찾아볼 것을 제안하는 `엉뚱함'도 보여주기도 했다. 삽화속의 `숨은 단어찾기'는 니나의 출생을 축하하기 위해 처음 시작된 것.
그는 "처음 몇주일이 지난 뒤 이 방법이 신선하지 않다고 느껴져 그만 뒀는데 (다시 시작해 달라는) 전화와 전보를 받게됐다"고 말했다.
허쉬필드 화백은 평소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삽화를 그렸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1969년 이래 허쉬필드의 독점 대리인 역할을 해온 화랑주인 마고 파이든은 그가 약 1만여개의 삽화를 그렸으나 원본 삽화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드물다고 말했다.
1903년 6월21일 미시시피주 세인트 루이스에서 태어낸 허쉬필드는 12살이 되던 해 부모를 따라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는 당시를 "우리는 뉴욕의 펜역에 도착, 차를 타고 암스테르담가(街)의 끝까지 가야 했다"면서 "어머니는 한달에 4달러 월세의 목조가옥을 구했는데 주위에 사과 과수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허쉬필드가 영화 삽화를 그리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가 프랑스 배우 샤샤 귀트리를 극장 팸플릿에 스케치한 것을 친구가 뉴욕트리뷴지에 보내 지면에 싣게 됐던 것이 계기가 됐다.
1920년대말 뉴욕타임스에 입사한 그는 이후 10년간 브로드웨이 연극 삽화를 그렸으며, 자신이 삽화에서 묘사했던 아서 밀러와 유진 오닐, 조지 거쉰 등과 같은 연극계 전설적 인물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최근 뉴욕박물관에 허쉬필드 회고전을 열었던 안드레 헨더슨 파네스톡은 "허쉬필드 삽화에 그려진다는 것은 모자에 큰 깃털을 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뉴욕타임스 전 편집자이자 허쉬필드의 친구이기도 한 아서 겔브는 인터뷰에서 "앨이 그리지 않은 주요한 연예인은 없을 것"이라면서 "앨이 그릴 때까지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허쉬필드는 1975년 명예 토니상을 수상했으며, 1996년 아카데미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다큐멘터리 영화 '화선(畵線)의 왕(The Line King)'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허쉬필드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오는 6월23일에는 브로드웨이 45번가 서쪽에 위치한 마틴 벡 영화관은 그의 이름을 따 '허쉬필드'로 개명될 예정이다.
그가 99세까지 장수한 것은 역시 90대까지 산 그의 부모의 유전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허쉬필드는 "내게 관심이 있는 일이 없었다면 나는 매우 지루했을 것"이라며 "나는 일주일에 7일을 일했으며 일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허쉬필드는 생전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했으며, 오후 4시에는 다과를 즐겼는데, 파이든은 "그는 왼손에는 차와 쿠키를 쥔 채 오른손으로는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세번째 부인 루이제 커즈와 딸 니나, 손자 1명이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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