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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거리, 나혜석 기념관

유동준 정월나혜석기념사업회 회장

금년은 정월 나혜석선생 탄생 110주년의 해이다.
1886년 4월 28일 수원에서 태어난 정월은 1948년 12월 10일 타계했다.
정월은 최우등으로 진명여고(3회)를 졸업하자 그 뛰어난 성적이 신문에 보도됐다. 이어서 일본여자미술대학 유학길에 오르니 여성 최초의 유학생으로 또 신문에 보도되니 화제의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여성 최초의 서양화가이면서 최초의 전업화가로 서울에서 개최한 전시회는 남녀 구분 없이 한국 최초가 된다. 소설 ‘경희’가 발굴되면서 여성 최초의 소설가로도 자리매김 했다. 또한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3.1운동에 가담, 5개월의 옥고를 치른 독립 운동가이면서 여성최초로 세계일주를 했다. 나혜석의 일거수일투족은 조선시대의 뉴스의 초점이 됐다.
1918년 9월 ‘여자계’2호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 ‘경희’에서 아버지가 “계집애라는 것은 시집가서 아들딸 잘 낳고 시부모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면 그만이니라”하실 때에 “그것은 옛날 말이에요. 지금은 계집애도 사람이라 해요. 사람인 이상에는 못할 것이 없다고 해요. 사내와 같이 돈도 벌 수 있고, 사내와 같이 벼슬도 할 수 있어요. 사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세상이에요”하던 생각을 하며 아버지가 담뱃대를 드시고 “뭐 어쩌고 어째? 네까짓 계집애가 하긴 무얼 해. 일본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귀한 돈 없애고 그까짓 엉뚱한 소리만 배워가지고 왔어?” 하시던 무서운 눈을 생각하며 몸을 흠찔한다.
소설 ‘경희’는 춘원 이광수의 ‘무정’이 발표된 1년 뒤 작품이다. 계몽주의 소설로는 ‘무정’보다 정월의 ‘경희’를 더 높이평가하기도 한다. 기록에는 ‘경희’보다 일년 앞서 발표한 ‘부부’가 있다. 이 작품이 찾아진다면 이광수·김동인·현진건·염상섭이란 한국문단의 구도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처럼 나혜석은 ‘경희’에서 “여자도 사람이외다”고 외치는 한국 근세사 최초의 여성운동가이기도 하다.
유학생 정월은 18세인 1914년 11월 ‘이상적 부인’을 ‘학지광’에 발표하면서 “현모양처(賢母良妻)를 여성의 이상형으로 보는 세태를 개탄하면서, 왜 여성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남성을 현부양부(賢父良夫)로 만들기 위한 교육법은 없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해 부덕(婦德)을 장려해 왔으나, 앞으로는 여성도 지식을 연마하고 기예를 익혀 무슨 일이든지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자”고 역설했다.
지금 이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여성들마저 지금도 50년 이상은 앞선 “우리들의 왕언니”라고 존경한다.
새천년 여성최초의 문화인물, 나혜석!
지난해에는 3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세계여성학대회가 한국에 유치돼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세계여성학대회와 함께 나혜석 바로알기 국제 심포지엄이 있었다. 나혜석은 이제 한국의 나혜석에서 세계의 나혜석이 된 것이다. 수원, 경기도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서울 롯데호텔에서 무려 1천600여명이나 되는 진명동문과 내빈이 합석해 성황을 이룬 서울진명여고 100주년 행사에서 ‘진명 100년·인물 100년’을 발간했다. 진명 100년사에 대표적인 100인의 인물을 선정한 것이다. 물론 정월을 정점으로 한 인물사가 발간돼 진명의 상징인물로 공식적으로 부각된 것이다. ‘나혜석 거리’에, 아니면 수원 신풍동 생가 터에 나혜석 기념관이 가시화 된다면 지하의 정월 나혜석 선생도 매우 기뻐할 것으로 믿는다.
인구 2만밖에 안되는 조그만 도시 강원도 양구군이 화가 박수근의 기념관을 세우자 독지가들은 그의 유작을 기증하고 있다. 또 경주에서는 김동리, 박목월의 기념관을 마련했다. 그런데 수원에 있어야 할 나혜석 기념관이 없다.
그간 전국에서 나혜석 거리를 찾은 사람만도 상당하다. 그들이 설렁탕 한 그릇이라도 먹고 갔으니 나혜석거리 하나만으로 발생한 경제 가치를 생각해서라도 진작에 나혜석기념관이 있었어야 했다. 다행히 지난해 하반기 경기언론인 클럽 초청연사로 나온 김용서 시장이 늦은 감은 있지만 나혜석 기념관을 금년 중 마련하겠다는 공약이 있었음은 무척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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