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비가 내린 뒤의 숲은 깊어진다.
깊어진 숲을 따라 산도 깊어진다.
깊어진 산을 따라 산길을 걷는 이들의 마음도 깊어진다. 하기야 숲만 깊어지고 산만 깊어지라고 내리는 비는 아니다. 여름이 깊어지고 있으니 마음도 따라 깊어지라고 내리는 비다. 생각을 따라 살지 말고 마음 길 따라 살아가라고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며 내리는 비다. 마음으로 스며드는 비다. 내리는 빗줄기를 따라 마음을 보내라고 젖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내리는 비다. 흐르는 빗물을 따라 그리움 실어 보내라고 내리는 비다. 이 곳 저 곳 두루 다니며 네 마음을 전할 테니 고단한 마음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내리는 비다.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가 힘차다. 장대비다. 내리는 빗줄기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를 닮았다.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 숲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며칠 전 여름 산에서 만난 소나무 숲 앞에 서 있는 듯하다.
며칠 전 들어섰던 여름 산에서 만난 소나무 숲이 꼭 이러했다. 장대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땅에서 하늘로 솟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땅으로 내린 것처럼 곧게 뻗은 소나무 숲이었다. 나무마다 질세라 제 자리를 차지해 빼곡하게 숲을 채우고 있었다. 산길을 들어서며 멀리서 바라본 소나무 숲은 그 모습이 너무도 빽빽하여 오직 소나무만 보일 뿐이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빼곡히 들어찬 소나무 숲의 위용에 마음을 빼앗겨 잰 발걸음으로 소나무 숲에 다가선다. 하늘을 가릴 듯 뻗어있는 소나무들을 올려 본다. 가지들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푸른 솔잎들 사이로 맑고 가벼운 여름 하늘이 시원스레 드리워져 있다. 소나무 가지들 사이로 하늘이 흐르고 있다. 하늘을 따라 바람도 흐른다. 여름 숲을 지나는 이들의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식혀줄 바람도 흐르고 있다. 솔잎을 흔들며 가지 사이를 지나던 바람이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소나무 사이사이로 소나무 숲과 조금 떨어져 서있는 단풍나무들도 보인다. 아직도 지난 가을의 아름다웠던 날들을 잊지 못한 듯 몇몇 가지는 붉은 잎 그대로 품은 채 바람을 맞고 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단풍나무처럼 지나온 아름다운 날들에 대한 그리움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그리움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바람에 꽃잎 실려 보내고 쓸쓸한 듯 허전한 듯 서 있는 진달래나무 개나리 나무들도 보인다. 그 모습이 사뭇 정겹다. 그리움을 닮았다. 그리움을 품었다. 그리움을 품은 것이 어디 진달래나무 개나리 나무뿐이랴. 이름 모를 풀잎들 또한 그리움을 닮았다. 그 풀잎들 사이로 꽃잎 같은 것이 홀로 움직인다. 그 움직임에 놀라 몸을 기울여 들여 보니 작은 개미이다. 몸집도 아주 작은 개미가 나방이나 어느 벌레의 날개쯤으로 보이는 것을 물고 열심히 집으로 가고 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본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시원하다. 마음도 시원해진다. 맑아진다. 숲의 말이 들려온다.
소나무 숲이 아무리 빼곡해도 깃들어 사는 생명이 있는 법이지요. 소나무 혼자 살아가는 숲이 아니랍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삶도 이와 같지요. 아무리 세상살이가 고단할지라도, 삶이 분주할지라도 마음 하나 깃들 자리는 있어요. 사랑이 깃들 자리는 있지요. 그리움 깊게 깃들 자리는 있어요. 그러니 고단한 삶이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살아갈 날들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머물러 자유롭게 살아갈 제 자리를 만나게 될 테니 말이에요.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품고 사랑하며 살아갈 날이 있을 테니 말이에요.
그런가. 정말 그런가.
아무리 고단한 삶일지라도 마음 하나 깃들 자리는 있는가.
빗줄기가 점점 거세어진다. 하늘을 따라 오는 듯하다. 거뭇거뭇하던 하늘이 시커멓게 변했으니 말이다. 번개와 천둥을 따라 오는 듯하다. 번개 불빛 점점 가까이 느껴지고 천둥소리 가까이 들리니 말이다. 거세어지고 요란해지니 말이다.
비가 온다.
여름이 깊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비다.
여름이 깊어지고 있으니 마음을 깊게 하라고 말해주는 비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그리움에 젖는다.
아무래도 빗속에 누군가의 그리움이 담겨 있는 모양이다.
그 그리움을 전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리는 비를 창가에 서서 홀로 바라보며 나도 그리움에 젖는다.
나도 그립다.
*최창남은 누구인가?
본보에 에세이 '그것이 그것에게'를 연재하게 된 최창남씨는 작곡가이자 공연 기획자, 동화작가,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실천적 운동가다.
20대에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1984년 목회자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교회를 떠나 노동자가 되었다.
이후 대구와 안양에서 노동운동과 예술운동에 참여했으며, 이 시기에 "노동의 새벽" "모두들 여기 모여 있구나" "노동해방가 2" 등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노동가요를 작곡했다.
1992년 복지단체인 '빚진자들의 집'을 설립했고, 안양 지역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몰래산타'가 되어 선물을 전해주고 있다.
이후 "우리 동네 아이들 1·2" "말썽꾸러기" 등의 동요 음반을 발표했으며, 뮤지컬 "예수를 만난 사람들" "너 푸른 솔아" 작업을 했다.
이 밖에도 동화집 "개똥이 이야기"의 "개학날"이 초등학교 6학년 읽기 교과서에 실리는 등 동화작가로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