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빛 쨍쨍하고 햇볕 뜨거운 여름날이 되면 나는 길을 걷다가도 자연스럽게 지나 온 삶을 만나게 된다. 거기 내가 있다. 나의 지나 온 삶들이 있다. 나를 만난다. 삶의 지나 온 흔적들을 길거리 곳곳에서 만난다. 마음의 한 자락에 품어 왔던 그리움들을 만난다. 함께 살아 왔던 이들을 다시 만난다. 그들과 함께 했던 날들로 들어간다. 아름다웠던 그 날들로 말이다. 세상의 거짓말에 마음을 빼앗기기 전의 순수했던 날들로 말이다. 사람들의 폭력에 마음과 몸을 빼앗기기 전의 순결했던 날들로 말이다. 그리움 마음에 품고 살아가던 날들로 말이다. 사랑으로 가슴 설레던 날들로 말이다. 투명하게 바라본다. 초여름의 햇살처럼 말이다. 한 여름의 햇살이야 뜨겁고 늦여름의 햇살은 눅눅하지만 초여름 햇살은 다르다. 깊고 맑은 물처럼 투명하다. 초여름 햇살에 비추어 보면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보인다. 그렇게 지난날들을 바라본다. 마음 기울여 들여 본다.
나팔꽃을 심는다. 한 아름 실어와 나팔꽃을 심는다. 땅을 판다. 화분에 담겨 있던 나팔꽃들을 들어내 땅에 심는다. ‘잘 자라라’고 ‘아름답게 피어나라’고 ‘제 그리움 담뿍 안고 살아가라’고 ‘제 사랑 잃지 말고 살아가라’고 마음의 말을 한다. 설렘을 담아 심는다. 분홍빛 나팔꽃도 심고 눈부시게 하얀 나팔꽃도 심는다. 보랏빛 나팔꽃도 심는다. 흙을 돋운다. 채우고 다진다. 심한 바람이 불더라도 꺾이지 말라고 뿌리 뽑히지 말라고 단단하게 다진다. 제한된 영양분만 공급되던 화분이 아니라 무한한 생명의 대지에 깊게 뿌리를 박고 살아가라고 단단하게 다진다. 살아가는 날들 동안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단단하게 다지고 다진다. 물을 듬뿍 붓는다. 부은 후 다시 다진다. 심고 나니 붉은 빛깔 나팔꽃이 하나 섞여있다. 분홍 빛깔의 나팔꽃 화분들 사이에 끼어들어와 있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이 참으로 예쁘다. 어디서든지 예기치 않은 손님은 늘 있기 마련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맞는다. 그 놈에게만 다시 물을 주며 ‘잘 살라’고 말한다. 마당 한 곁에 나란히 심어진 나팔꽃들을 바라본다. 마음이 기쁘다. 심겨진 나팔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나팔꽃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귀를 기울인다. 마음을 기울인다.
어린 시절 나팔꽃에서 울려나던 소리들이 들린다.
유년 시절 나팔꽃에서는 참으로 많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옆집 살던 수정이의 예쁜 목소리도 들리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려왔다. 때로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멀기만 하던 바닷가의 파도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한여름 숲에서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들의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제 왔니?’하며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시던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리고 무섭기만 하던 털북숭이 아버지의 굵은 목소리도 들려왔다. 어른이 되면 강아지를 많이 키우며 사과만 먹고 살겠다던 내 마음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유년 시절에는 그렇게 많이도 들려왔던 소리들을 어른이 되어서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나팔꽃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되자 나팔꽃의 말만 듣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의 마음의 말도 제 자신의 마음의 말도 듣지 못하게 되었다.
들을 수 없게 된 답답한 마음을 위로하려는 듯 말을 한다. 나팔꽃에게 말을 한다. 나팔꽃의 마음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되자 나팔꽃에게 내 마음의 말을 한다.
‘부디 잘 자라라’고 말이다.
‘팍팍한 세상이니 제 그리움 품고 잘 살아가라’고 말이다.
‘다시는 제 사랑 잃지 말고 모진 세상 꿋꿋이 살아가라’고 말이다.
‘제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누어 주라’고 말이다.
나팔꽃에게 말한다.
나팔꽃이 내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 채 나팔꽃에게 말한다.
쨍쨍한 여름 햇빛을 비켜 바람이 분다. 산자락에서 내려오는가. 시원하다. 햇살 쨍쨍한 여름이라고 늘 더운 것만은 아니다.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있고 마음 쉬어가는 마음의 숲도, 그늘도 있다.
그 뿐이랴. 내가 잠들어 있던 신 새벽부터 피어나 아침이면 활짝 웃으며 ‘제 사랑을 잃지 마세요’라고 말해주는 나팔꽃도 있다. 마음 열어 보이는 나팔꽃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