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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선다. 여름 숲이다. 숲 내음 가득하다. 깊게 숨을 들이쉰다. 언제 이렇게 무성해졌을까. 지난 봄 들어선 숲길은 모진 겨울 안간힘을 다해 살아남은 여린 싹들뿐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굵고 큰 잎으로 자랐을까. 따뜻해진 기운으로 녹아내린 언 땅에 흐르는 물 머금으며 겨우 마른 목을 축이던 여린 싹들뿐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하늘을 가리도록 짙어졌을까. 푸르러졌을까.
숲이 깊어졌다. 깊어진 숲길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행여 나뭇잎이라도 풀잎이라도 놀랄세라 마음 기울여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고요하다. 바람 한 점 없다. 나뭇잎들도 소리를 죽여 속닥이고 큰 나무들도 목소리를 낮추어 수런거릴 뿐이다. 나뭇잎들의 속닥이는 소리에도 큰 나무들의 수런거리는 소리에도 숲은 고요하기만 하다.
고요하고 깊어진 숲으로 마음을 보낸다. 마음을 따라 걷는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나처럼 제 마음 달래려 깊은 여름 숲을 걷는 이들이 있을까. 따라 오는 발자국 소리에 놀라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깊은 여름 숲의 적막함만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내 발걸음에 내 마음이 놀랐나보다. 고개를 돌려 앞에 놓여 있는 숲길을 바라본다. 숲은 말없이 내 앞에 길을 열어 보인다. 어서 오라고 나를 반기는 것일까. 말이 없다. 열린 숲길을 따라 들어선다. 멀리서 가까이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비베쫑 비베쫑’ 즐거운 듯하고 ‘소쩍 소쩍’ 슬픈 듯하다. 나를 반기는 것일까. 그저 제 삶이 즐겁고 고달파 노래하는 것일까.
숲길 곁에 의자가 놓여 있다. 지나는 길손을 위해 만들어 놓았을까. 조악하게 만들어진 긴 의자이다. 나무들 무성한 여름 숲에 시멘트로 만들어진 것이 저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다. 살아있는 것들로 가득 찬 숲에 죽은 것이 저 혼자 놓여있다. 저도 조금은 미안했던지 나무 모양을 하고 있다. 나무 색을 입었다. 그 모습이 왠지 슬프게 보인다. 불쌍하다. 깊은 숲 속에 저 혼자 앉아 나 여기 있다고 나 좀 보아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문명의 아픈 비명을 듣는 것만 같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너무 많이 앞서가 돌아갈 수 없는 문명의 슬픈 운명을 보는 것만 같다. 사람들의 운명을 보는 것 같다. 우리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숲 속에 있지만 숲 밖에 있는 듯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숲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어찌 이 의자뿐이랴. 숲 속에 있지만 숲 밖에 있는 것이 어찌 이 의자뿐이랴. 나라고 나무 색만 입은 이 조악한 의자와 다를 것이 무엇이랴.
숲에 어울리지 않기는 그나 나나 매한가지이다.

의자에 앉는다. 기대어 앉는다. 숲 속에 앉아 숲을 바라본다. 무성해진 나뭇잎들로 인해 여린 가지들이 흔들린다. 잔바람도 없는데 가지들이 흔들린다. 여름 숲의 짙은 내음이 온 몸을 감싼다. 마음 깊이 스며든다. 마음 기울여 여름 숲에 들어온 미안함을 전한다. 숲에게 전한다. 고마움도 전한다. 늘 말없이 맞아주어 고맙다고 전한다.
숲이 내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받아준 것일까.
아카시아 꽃잎이 떨어진다. 하나 둘 떨어져 내린다. 눈앞으로 가만히 내려앉는다. 마치 공기를 밟고 내려오는 듯 그 모습이 유유하다. 무성해진 나뭇잎들 사이로 여름 햇살이 비췬다. 햇살을 받은 꽃잎들이 반짝인다. 아름답다. 소리 없이 풀잎에 내려앉는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단아하다. 내 삶도 저리 단아할 수 있을까. 꽃잎이 내려앉을 때 마다 풀잎도 반가운 듯 제 몸 흔들며 반갑게 맞는다. 내리는 꽃잎들 사이로 반짝이는 것이 있다.
나비다. 나비가 난다. 내리는 꽃잎들 사이로 나비 한마리가 난다. 유려하다. 가만히 머물러 있는 듯 꽃잎들 사이를 날고 있다. 마치 한 장의 꽃잎처럼 보인다. 나비가 꽃잎처럼 내 무릎에 내려앉는다. 그 모습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무릎에 살포시 내려앉아 날개를 접은 나비를 보며 마음이 시려온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모습 때문일까. 지나 온 삶의 서러움 때문일까. 왈칵 눈물이 난다. 이 작은 나비도 내 마음을 아는 걸까. 저도 나처럼 지난 날 서러운 삶을 살아 왔을까. 고단한 삶을 지나 왔을까. 그렇기도 하겠지. 그렇기도 했겠지. 나비가 되어 꽃잎처럼 바람을 타고 날기 위해 기다렸던 긴 시간들이 어찌 서럽지 않았을까 말이다. 나비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고치 안에서 제 몸 녹이던 그 긴 고통의 시간들이 어찌 괴롭지 않았을까 말이다. 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지나 왔던 그 길고 길었던 세월이 어찌 고단하지 않았을까 말이다.
무릎에 앉았던 나비가 날개를 편다. 날아간다. 꽃잎처럼 날아간다.
숲길을 따라 날아간다. 따라 오라는 듯 어서 오라는 듯 몸 뒤척여 나를 보며 날아간다.
숲길을 따라 날아간다. 깊은 여름 숲 속으로 날아간다.
꽃잎 한 장 바람을 타고 날아가듯 날고 있는 나비를 바라본다. 물끄러미 바라본다.
거기 길이 나 있다.
숲길이다.
숲길을 따라 숲이 무성하다.
나비를 따라 숲길을 걷는다.
저만치 앞서가는 나비를 바라보며 숲길을 걷는다.
깊고 깊은 여름 숲을 걷는다. 생명 충만하고 녹음 우거진 선선한 숲길을 걷는다.
나비와 함께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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