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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숲을 품는다.

최창남 글

 

지난 삶을 돌아보세요.
당신을 지키고 살려온 것들이 보이시나요?
당신의 영혼이 메마르지 않도록 지켜 준 사랑이 느껴지시나요?
당신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늘 당신을 품고 지낸 당신의 사랑이 느껴져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고 잊고 지냈던 당신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분주하다는 이유로 삶이 고단하다는 이유로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그 사랑을 외면하였던 당신 자신의 모습이 보여요?
당신이 잃어버린 것들이 당신의 사랑이고 당신의 삶이고 당신의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리석기 그지없었던 지나 온 삶의 모습을 보고 계세요?

숲을 지난다. 여름 숲을 지난다. 여름 숲은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숲은 자신이 품고 있는 생명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품어 키우고 살린다. 숲의 마음이다. 그러한 숲의 마음으로 인해 여름 숲은 다른 여느 계절의 숲보다 분주하고 부산하다. 때론 요란하다. 비 내린 여름 숲의 아침은 더욱 그러하다. 이른 아침 비에 젖은 여름 숲을 들어가면 지난 밤 내린 비에 고단하여 그제야 젖은 깃털을 말리느라 분주한 새들이 푸드덕 날개 짓하며 몸을 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몸단장을 끝낸 새들의 아침을 맞는 노랫소리도 들려온다. 지난 밤 내린 비로 불어난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으르릉거리고 우당탕거리며 흐르는 계곡물 소리도 들린다. 지난
밤 상한 곳은 없는지 염려하고 안도하고 기뻐하는 나무들의 수런거리는 소리 탄성소리도 들린다. 아침햇살에 반가운 마음을 어쩌지 못해 저희들끼리 몸 비비며 속닥이는 나뭇가지들 소리도 들린다. 지나는 아침 바람에 나뭇잎 후드득 후드득 부딪히며 속삭이는 나뭇잎들의 소리도 들린다. 그뿐이랴. 마음 기울여 산길을 걸으면 마음 속으로 스며드는 더 작은 소리들도 들을 수 있다.지난 밤 비바람에 뿌리 채 뽑혀 쓰러진 큰 나무로 인해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은 작은 나무들과 꽃들, 풀들과 작은 생명들의 기쁨에 찬 소리이다. 생명의 소리이다. 생명의 환희다.

숲은 이 모든 생명들을 품어 안는다. 나무도 풀도 새도 벌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들도 바위도 바위에 낀 이끼도 냇가에 구르는 작은 돌멩이도 품는다. 숲은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들이 숲을 살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숲은 그 모든 것들이 숲의 일부이고 숲 그 자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자신이 지나 온 삶의 흔적이고 살아가야할 의미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모든 한 생명 한 생명이 제 몸이고 제 영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제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곧 숲이고 숲이 곧 그 모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가. 정말 그런가. 숲은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결코 소홀하지 않는가. 그것이 자신의 지난 삶의 흔적이고 살아갈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아는가. 숲도 아는 것을 사람만 모르는가. 사람만이 제 삶을 지켜주고 제 영혼이 메마르지 않도록 지켜준 사랑을 잊고 지내는가. 제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깊은 사랑은 늘 품어준 사랑을 잊고 지내는가. 그 사랑을 잃어버리고 제 삶을 잃어버린 채 고단한 마음을 뉘이지 못하고 잠 안 오는 밤을 서성이는가. 사람만이 제 삶이 품고 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 채 외면하고 살아가는가. 그런가. 정말 그런가. 정말 그런가 보다. 사람만이 저를 사랑하고 지키며 살린 것들을 제 삶에서 잃고 살아가는가 보다. 제 삶을 품어 안지 못하고 살아가는가 보다.

바람이 불어온다. 점점 세차게 불어온다. 세찬 바람에 나뭇잎들이 흩날리며 춤을 춘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몸에 부딪친다. 얼굴을 때린다. 작지만 깊은 아픔이 느껴진다. 제 몸에서 떨어진 나뭇잎이기 때문이리라. 비에 젖은 나뭇잎이기 때문이리라.

빗방울이 떨어진다. 지난 밤 그리도 세차게 내리고서도 아쉬움이 남았던 모양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가 내린다. 나뭇잎들 사이로 실비가 내린다. 낮은 바람으로 흩뿌려진 비가 안개처럼 내린다. 젖은 대기를 타고 여름 숲에 내리는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다워 슬프기까지 하다. 처연한 마음이 된다.

그 모습이 꼭 내 삶을 닮았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난다.
실비 내리는 숲길을 지난다.
숲길을 걷는다.
숲의 품으로 들어가며
숲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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