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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무 곁에 서서

최창남 글

 

창문을 연다. 맑은 공기가 스며들어 가슴을 채운다. 지난 밤 내내 숲 속에 머물었던 바람도 언제 들어왔는지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마음이 맑아진다. 이른 새벽부터 숲을 지나온 바람이다. 지난 밤 내내 숲에 머물며 숲의 기운을 담뿍 담고 온 바람이다. 바람은 지난 밤 숲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말해준다. 어떤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어떤 나무가 병이 들었는지 말해준다. 어떤 꽃들이 피고 어떤 풀잎들이 자라고 있는지 말해준다. 나무가 나무에게 꽃들이 꽃들에게 풀잎이 풀잎들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수런거리던 이야기들도 전해준다. 벌레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한다. 바람이 전한 소식들에 마음이 동하여 옷깃을 여미고 아침 산책을 나선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지지배배 비베쫑비베쫑 짹짹짹짹 꾸룩꾸룩 시시시시-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새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한다. 나를 반기는 것일까. 아침이니 오서오라고 나를 반기는 것일까. 아니면 제 즐거움에 혼자 노래하는 것일까. 제 슬픔에 노래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새들은 새들대로 제 노래를 하고 나는 나대로 내 길을 갈 뿐이다. 걷는 발걸음을 따라 아침이 오는 듯 밝아진다. 하늘을 본다. 하늘이 밝아진다. 아침은 하늘에서부터 오나보다. 하늘에서부터 땅으로 오나보다. 하늘부터 밝아지는 보니 말이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발목이 젖어든다. 풀잎에 맺힌 물방울들 때문이다. 나뭇잎에 매달린 물방울들이다. 빛 하나 들지 않는 깊고 깊은 땅 속을 지나온 물방울들이다. 나무뿌리를 타고 올라 나무를 살렸고 숲을 살렸던 물방울들이 이제 하늘을 향한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물방울들 위로 아침 햇살이 비췬다. 햇살을 받은 물방울들이 나뭇잎들 위에서 보석처럼 빛난다. 영롱하다. 참으로 아름답다. 이른 아침 숲길을 걸으면 햇살을 품은 수백 수천의 물방울들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이른 아침의 숲처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깊고 맑고 고요하고 아늑한 것이 있을까.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내 삶도 이 같을 수 있을까.
내 삶도 햇살을 담은 물방울들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내 삶도 이른 아침의 숲처럼 깊고 맑고 고요하고 아늑할 수 있을까. 숲이 나를 위로하고 품어 안아주듯이 내 삶을 만나는 이들을 품을 수 있을까. 숲은 사람 사는 세상처럼 옳고 그름을 주장하며 편을 갈라 차별하지 않는다. 나도 숲처럼 내 삶을 찾는 이들을 맞이할 수 있을까. 사랑으로 품어지지 않은 옳고 그름은 사람을 해칠 뿐이다.
숲처럼 살고 싶다. 숲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숲을 찾는 이들을 맞는다. 마음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든지 미움과 증오가 가득한 사람이든지 구별하지 않는다. 생명을 살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든지 생명을 해하고 죽이며 살아가는 사람이든지 구별하지 않는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든지 제 욕심만으로 채워져 있는 사람이든지 구별하지 않는다. 제 마음을 지켜 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든지 제 마음을 잃어 제 삶도 잃고 살아가는 사람이든지 말이다.
숲의 삶이다. 자연의 은총이다.

나무 곁에 선다. 수백 년을 살아 왔을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수백 수천 년 모든 생명들을 살리며 아무 말 없이 살아 온 나무들이다. 나도 나무들처럼 마음 깊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도 나무들처럼 마음의 눈으로 깊이 들여 보며 내 삶을 찾는 이들을 아무런 구별 없이 그렇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도 나무들처럼 마음의 깊은 눈으로 제 삶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을까.
마음의 깊은 눈으로 들여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법이다. 마음의 깊은 눈으로 들여 보면 꽃도 이전의 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무도 이전의 나무가 아님을 알게 된다. 삶도 이전의 삶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풀도 꽃도 나무도 숲도 산도 자연도 모두 새로워진다. 더불어 삶도 새로워지는 것이다.
나무 곁에 선다. 나무에 기대어 선다. 아침 햇살이 숲에 드리운다. 숲의 깊은 속살까지 아침 햇살이 스며든다. 나무에 스며든다. 나뭇잎들에 스며든다. 나무들에게서 빛이 난다. 나무들이 빛난다. 나뭇잎들에게서 빛이 난다. 나뭇잎이 빛난다.
나무를 올려 본다.
내 삶은 나무를 닮을 수 있을까. 나무처럼 마음의 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을까. 내 삶을 바라 볼 수 있을까.
나무가 품고 있던 물방울들이 옷으로 스며든다. 옷을 적신다.
몸도 마음도 젖어든다.
그렇게 나무 곁에 서서 아침을 맞는다.
하늘이 높고 맑다. 나무는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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