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찬호’는 『도시는 미디어다』에서 도시의 이미지가 즐거움과 관심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어서 급속한 도시화 과정과 근대화 과정에서 빚어진 생활로부터의 유리 현상을 표정이 없는 도시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와 근대화 과정이 고의적으로 방기해온 문제, 즉 이야기가 사라진, 맥락을 상실한 도시를 표정이 없는 도시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램 질로크’는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라는 책에서 도시의 고고학이라는 ‘벤야민’의 방법론을 언급하면서 “도시 환경이 형성되는 방법 그리고 기억 작업이 도시 환경을 형성하는 방법의 탐구를 통해 도시와 기억하는 주체의 상호관계를 표현하려한다”고 분석한다.
이즈음에서 도시는 텍스트로 바뀐다. 텍스트로서 도시의 중요성은 “우리는 도시내부에서 과거를 정의하고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명확히 표현하는 그런 문화적 형식과 인공물을 만나기 때문이다”는 설명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텍스트화 되고 있는 이 도시 공간은 인간이 남겨놓은 것들이 축적되는 곳이다. 설계자와 큐레이터에 의해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되고 선별된다는 점에서 도시와 박물관은 묘한 닮은 꼴을 이루고 있다. 텍스트로서 도시는 표상화된 기념물과 도시설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새로움과 삭제에 대한 강박관념을 드러낸다. 박물관 역시 새로운 것의 창조보다는 과거에 대한 향수 냄새로 진동한다.
기억을 삭제하려는 노력과 과거를 향수하려는 흐름은 하나의 짝으로 우리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기억을 지우려는 콤플렉스와 과거를 향수하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에는 새로움에 대한 집요한 욕망과 불안함이라는 근대적 이중성이 담겨 있다.
빈민촌 철거의 폭력성과 화장장 이전에 대한 님비현상, 갑자기 만들어진 갯벌 옆의 마을들, 논바닥 위나 싹둑 잘려나간 산허리의 절개지에 세워지는 아파트경관의 이미지에는 새로움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박물관은 어떤가. 전리품과 사치품으로부터 인간의 일상 나아가서는 뇌의 시냅스에서 작동하는 가상의 미술관까지 진화하였다. ‘전진성’은『박물관의 탄생』에서 박물관이 일상적 삶과 의 거리가 소멸되고 과거와 현재가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있음 강조한다.
박물관과 소장품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서 분석과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지식과 문화의 주요구성원임을 자처하는 커다란 무덤과 같은 박물관들, 낡은 존재에 대한 공포의 도피처로서 박물관은 복잡한 현대의 감정들을 드러낸다.
삭제와 향수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어울림은 혼돈스럽다. 이즈음에서 텍스트로서 도시와 박물관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 도시와 박물관 읽기는 과거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기억을 창조적으로 재생함으로써 무표정한 도시와 향수로 가득 찬 박물관을 새로운 문화적인 아이콘으로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을 공급한다.
이 자양분은 통해서 새로움을 빙자해서 끊임없이 삶의 이야기를 잘라내고 삶을 분절화 시키는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비로서 차이의 아름다움이 흐르는 감정이 흐르는 도시를 만들 수가 있다.
박물관 역시 신전의 문지기들이 어슬렁거리는 거대한 유물창고를 벗어나 아침의 햇살처럼 삶을 자극하는 지식과 문화의 중개자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