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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여름 숲이다. 여름 숲은 비가 오지 않았더라도 습하다. 축축하다. 시원하다. 깊고 깊은 땅 속에서 나무가 빨아올린 물들이 나뭇잎을 통해 대기를 적시기 때문이다. 울창한 나무숲들이 햇빛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 나뭇가지들을 흔들어 줄 때에만 간간이 햇빛이 들어온다. 나뭇잎이 하늘을 덮었다. 나뭇잎으로 덮인 하늘이 푸르고 푸르다. 잔바람에 나뭇잎들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하늘이 흔들리는 듯하다.
숲길을 걷는다. 숲 여기저기에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이제 겨우 십 년 이십 년 짧은 세월을 살아왔을 여린 나무들도 있고 족히 수십 년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아름드리 나무도 있다. 채 자라기도 전에 모진 비바람에 쓰러진 여린 소나무도 있고 수백 년을 세월과 함께 지켜온 상수리나무도 있다. 지난 여름 장마에 뿌리 채 뽑힌 나무들도 있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저 홀로 쓰러진 나무들도 있다. 발걸음 따라 걸어가는 숲길에 나무가 놓여있다. 쓰러진지 오래된 나무이다. 나무는 이미 삭았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다. 죽어 쓰러진 나무는 많은 벌레들과 미생물들의 양식으로 집으로 이용된다. 두꺼비 한 마리도 죽은 나무를 집으로 삼았나보다. 먹이가 많기 때문이리라. 뚫린 구멍에 두꺼비 한 마리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예기치 않은 길손에 놀랐는지 눈만 데룩데룩 굴리며 죽은 듯 있다. 그 모습이 마치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사람들을 닮았다.
참으로 오래된 숲이다. 세월과 함께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숲이다. 큰 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다. 밑둥치부터 뽑혀 쓰러진 나무도 있고 수명을 다해 나뭇가지부터 부러져나간 나무도 있다. 쓰러져 있는 수많은 나무들 사이를 지나 한 나무 앞에 선다. 이미 완전히 삭아져 가고 있는 나무이다. 밑둥치만 남기고 부러졌다.
생명을 다해 끝내는 제 무게를 견디지 못했으리라. 오래고 오랜 세월 수많은 생명을 품으며 살아오다 힘이 다하였으리라. 힘이 다하여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병이 들었으리라. 부러진 나뭇가지로부터 버섯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리라. 그렇게 죽어갔으리라.
쓰러진 나무의 온 몸에 버섯이 촘촘히 박혀있다. 이미 나무의 몸은 텅 비어 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슬프다. 아무리 애를 써도 늘 텅 빈 가슴을 어쩌지 못하는 우리 삶을 닮았다. 내 삶을 보는 듯하다. 마음 기울여 나무를 바라보며 슬픈 마음을 달랜다.
그래, 참으로 오랜 세월을 견뎌 왔구나.
모진 세월 얼마나 많이 힘들었겠니. 지나 온 수백 년의 삶 동안 겪을 수밖에 없었던 숱한 아픔, 회한, 고통, 슬픔이 얼마나 많았겠니. 가슴 시리고 절절했던 순간들은 얼마나 많았겠니.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랑을 떠나보내고 눈물 흘린 밤은 또 얼마나 많았겠니. 잃을 수 없는 벗들을 잃고 눈물을 삭인 날들은 얼마나 많았겠는가 말이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기쁜 날들도 있었겠지. 설레고 들뜨고 기뻤던 날들도 있었겠지. 그날들을 생각하려무나. 그 날들을 생각하며 이제 편안히 쉬려무나. 이제 지친 몸을 뉘이고 편안히 쉬려무나. 내 품에 기대어 고단한 마음을 위로 받으려무나. 숲에 기대어 지친 영혼을 편안히 누이려무나.
나무에게 말한다.

나무를 만진다. 나무는 소리도 없이 부서져 내린다. 이미 삭아 있다. 손에 나무의 가루만 남는다. 살아 있는 날 동안 그처럼 단단했던 네 몸도 한 줌 가루가 되었구나. 한 줌 흙이 되었구나. 너도 이제 흙으로 돌아갔구나. 그래, 이제 지친 몸을 편안히 쉬려무나. 후일 다시 만나자꾸나. 새 생명으로 다시 만나자꾸나. 우리 다시 만나는 날 기쁨으로 노래 부르자꾸나. 온 몸으로 부둥켜안고 춤추자꾸나. 기쁨으로 눈물 흘리며 춤추자꾸나.
듣는 이도 없는 숲에 홀로 앉아 삭아 버린 나무에 대고 말한다.
나무는 말 없는데 나 홀로 애절해하며 말한다.
내 마음에 대고 말한다.
나무도 알고 있는 제 삶의 길을 나만 모르고 있나보다.
나무도 알고 있는 마음의 길을 나만 모르고 있나보다.
그저 부는 바람에 삭은 제 몸을 말없이 날리고 있는 나무도 아는 것을 나만 모르나보다. 아무래도 나무도 알고 있는 삶의 의미를 나만 모르나보다.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나만 모르나보다.
바람이 분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나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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