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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는 울림이 있다. 숲에 들어서면 그 울림을 들을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숲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생명들의 지나온 삶의 이야기들이다. 숲에 가득한 그 이야기들이 숲만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숲으로 들어가 마음 기울이면 그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이야기들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겨 놓은 삶의 흔적들도 만날 수 있다. 말로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말로는 할 수 없었던 삶의 이야기들이다.

숲에 사는 모든 생명들은 제각기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습들을 제 몸에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봄이면 피었다 지는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에서부터 수백 년을 지나 천 년을 사는 상수리나무나 갈참나무 굴참나무 등도 수천 년을 사는 주목과 같은 나무들도 모두 제 몸에 제 삶의 흔적을 남긴다.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의 색이 노란 것도, 진달래나 철쭉의 색이 붉은 것도, 개망초꽃이나 조팝나무의 색이 하얀 것도 모두 제 삶의 이야기들이다. 삶의 흔적이다. 나뭇잎이 뭉쳐나는 것도, 띄엄띄엄 떨어져 나는 것도 모두 제 삶의 흔적들이다. 같은 종류의 나무일지라도 나뭇잎이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모두 제각기 제 삶의 모습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살아오는 날들 동안 겪어 온 수많은 아픔과 깊은 슬픔들로 인해 같은 나무일지라도 모두 다른 모양의 껍질을 지니고 있다. 깊은 슬픔과 모진 시련을 이기며 자라 온 흔적들이다. 얼마나 그 아픔과 슬픔이 깊고 시련이 모질었으면 제 살을 찢고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자라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숲길을 걸으면 속닥이며 이야기하는 꽃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나무들의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꽃과 나무들의 이야기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몸 기대어 바위 곁에 앉기만 하여도 수백 수천 수만 년을 지나며 보아 온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바위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단단한 제 몸을 갈라 이름 모를 풀에서부터 장성한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받아들여 키우는 바위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여름이 깊어지고 가을이 되어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된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모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날게요.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찾아올게요.

지고 있는 꽃잎을 바람에 떠나보내고 있는 꽃들의 말이 들린다.

지난 비바람에 꺾여 쓰러졌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제 삶을 버리는 것이 아니에요. 죽는 것이 아니에요. 숲 안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수많은 생명들을 살리는 것이에요. 숲에서는 언제나 삶과 죽음이 함께 있어요. 그러니 슬퍼하지 마세요. 마음 길 따라 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어요.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어요.

지난 장마에 제 삶을 채 살아가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나무들의 말도 들린다.

그저 담담히 웃는 듯 말없이 내게 품을 내어주는 바위들의 말도 들린다.

언제든지 힘들 때면 내게 기대세요. 이름 모를 풀을 품듯, 소나무를 품어 안듯 당신도 품어 드릴게요. 내게 와 쉬세요.

꽃과 나무와 바위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숲도 말을 한다. 꽃을 피우고 나무를 키운다. 바위를 드러낸다. 그 모두가 숲의 말이다. 그 모두가 숲의 이야기들이다. 숲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다. 깊은 숲은 깊은 계곡을 만들고, 깊은 계곡은 깊이 흐르는 법이다. 숲의 삶이다. 삶의 말들이다.

숲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은 모두 제 삶의 말을 한다. 숲에 깃들어 사는 생명만이 아니다. 이 땅에 몸 기대어 사는 생명들은 모두 제 삶의 말을 하고 제 몸에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이 땅에 몸 기대어 사는 생명들 중 제 삶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뿐이다. 사람만이 삶의 말이 아니라 생각의 말을 한다.

제 삶이 마음 깊이 품고 있던 마음의 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전해들은 생각의 말을 한다. 제 마음의 말을 듣지 못한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생각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 뿐이랴. 사람만이 제 삶의 흔적을 제 몸에 지니고 있지 않다. 제 삶의 흔적을 지우기 때문이다. 세상이 가르쳐준 거짓말에 속아 제 삶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 삶의 깊은 아픔과 슬픔, 그리움으로 가슴 시리고 절절했던 순간들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깊은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슬픈 일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아련히 아픔이 인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아려오는 아픔으로 몸을 일으키는 나를 보며 나무 그늘 아래 아련히 서있던 바람꽃이 웃는다.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그저 제 마음 길 따라 살아가세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바람꽃이 말한다.

‘안녕~’하고 말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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