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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여름 숲이야 그 울창함으로 모두 깊지만 여름의 참나무 숲은 더욱 깊다. 마치 하늘에라도 닿을 듯 뻗어있는 나무 기둥에 매달린 무성한 가지와 나뭇잎들 때문이다. 한 여름의 낮이라도 참나무 숲에 들어가면 마치 고즈넉한 저녁을 맞는 듯 숲은 서늘하고 어둡다.
고요하고 깊다. 마음 절로 깊어진다. 바람이라도 불어와 참나무 가지를 흔들어 나뭇잎이라도 펄럭여야 햇살을 만날 수 있다.
참나무 숲을 지나는 내 발걸음에 어치가 ‘과아 과아’하고 큰 소리로 운다. 낯선 발걸음에 놀랐으리라. 낯선 이를 경계하라고 숲의 친구들에게 알리는 것이리라. 미안한 마음 어치에게 전하며 조용히 걸음을 내딛는다.
행여 밟히고 차이는 생명이 있을까 저어하여 조심스레 발걸음을 뗀다. 행여 내 발걸음에 놀라 오수를 즐기던 새들이라도 잠에서 깰까 저어하여 마음 기울여 걸음을 옮긴다. 그런 마음이 어치에게 전해진 것일까. 어치는 ‘쀼우 쀼우’하고 아까와는 사뭇 다른 예쁜 목소리로 운다. 낯선 이라도 그다지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준 것일까. 내 마음을 알아준 어치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려 나뭇가지 위를 살핀다. 참나무의 무성한 나뭇잎들에 가려 어치는 보이지 않는다.
저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어치를 보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걸음을 옮긴다. 어치는 가을이 되면 몇 주 만에 수백에서 수천 개의 도토리를 주워 모은다. 그 중에 열 개 정도는 항상 입 안에 있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배고플 때마다 꺼내 먹는다.
나머지는 땅 속에 묻어 놓는다. 모진 겨울을 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묻어 놓은 것들 중 몇몇이 살아남아 천 년을 사는 상수리나무로 자란다.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으로 자란다. 몸이 무거워 바람을 타고 이동할 수도 없고 다른 동물들의 몸에 붙어 이동할 수도 없는 참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들을 어치는 산의 이곳저곳으로 옮겨준다. 어치는 이렇게 함으로써 참나무 숲을 키운다. 그리고 그 열매를 먹으며 자신도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숲 길 옆으로 벌써 떨어진 도토리들이 있다. 제법 많다. 아직은 가을이 깊어지지 않아 어치와 다람쥐들이 저장을 시작하지 않았나 보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들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상수리나무에 기대어 앉는다. 편안하다.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하다. 도토리를 주어 든다. 매끈한 것이 참으로 잘 생겼다.
이 작은 것 속에 이토록 큰 나무가 숨어 있단 말인가. 이토록 작은 열매 속에서 이처럼 큰 나무가 자라고 있단 말인가. 이처럼 작은 씨앗이 천 년을 사는 상수리나무로 자란단 말인가. 거목으로 자란단 말인가. 도토리를 손에 쥐고 눈을 감는다. 무엇이 이 안에 있을까. 무엇이 이 작은 씨앗을 그처럼 큰 나무로 키우는 걸까. 깊고 깊은 땅 속을 지나 온 맑은 물들이 있다. 물소리가 난다. 바다를 지나고 산을 넘고 참나무 숲을 지나 온 바람이 있다. 바람 부는 소리가 들린다. 부는 바람에 나뭇잎 펄럭일 때마다 비취던 햇살이 담겨 있다. 도토리를 쥐고 있는 손이 따뜻해 온다. 이 작은 씨앗 안에 자연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구나. 우주의 기운이 다 들어있구나. 이 작은 씨앗 안에 또 무엇이 있을까. 이 작은 열매도 꿈을 꿀까. 이 작디작은 씨앗도 제가 천 년을 사는 상수리나무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것을 꿈꾸고 있을까. 그 꿈도 이 안에 들어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저 자연의 놀라운 손길에 마음 기울여 감사를 표할 뿐이다. 작은 도토리 열매를 손에 쥐고 겸허한 마음이 될 뿐이다. 생명의 경이로움이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살아있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자유로움이다. 자유로움으로 나누는 다른 생명들과의 교감이다. 자연과의 소통이다.
나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숲 길가에 참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상수리나무도 있고 갈참나무 졸참나무도 보인다. 굴참나무도 제 자태를 뽐내며 서있다. 바람이라도 불어 나뭇잎들이 흔들릴 때면 큰 파도가 이는 것만 같다. ‘우수수 쏴아~쏴아~’하는 소리를 낸다. 나뭇잎들이 흔들릴 때면 그 큰 그림자로 인해 마치 숲이 움직이는 것만 같다.
저들이 모두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 왔구나.
천 년의 꿈을 꾸고 살아 왔구나.
그 모진 나날들을 견디어 내고 이렇게 장하게 자라났구나.
나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참나무 숲길을 걷는다.
손에 쥐었던 도토리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무심한 듯 바람에 가지 흔들리며 가만히 서 있는 참나무 숲길을 걷는다.
오던 길을 돌아 바람에 흔들리는 참나무들 사이를 지난다.
숲 밖으로 나선다.
노을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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