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廉)·치(恥)를 모르는 자는 공직(公職)을 구하지 말라.
주필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 16일, 전국법원장 회의에서 훈시를 통해 최근 벌어진 일부 법조인의 독직사건과 관련, 대국민 사과발언을 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각별한 믿음을 아끼지 않으셨던 국민이 받았을 실망감과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가리고 사회의 부정을 단죄해야 할 법관이 도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게 된다면 아무리 뛰어난 법률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법관 자격이 없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에 처한 주요 원인이 우리 스스로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깊이 자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장이 판사의 독직사건과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우리나라 사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60년 대 이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경제성장이라는 외길을 줄곧 달려왔다. 그 결과, 40여년 만에 수출 규모로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부강한 나라로 발전했다. 그러는 동안, 민주주의를 한때 포기한 적도 있고, 윤리와 도덕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농후해졌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정치적 민주주의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윤리적인 가치관은 온데 간데없는 살벌한 사회로 변하고 말았다. 가장 깨끗해야 할 법관들마저 부패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기야 어디 여기뿐이겠는가. 아직도 썩어빠진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로 잘 알려진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은 국가를 유지시켜가는 데 필요한 네 가지 큰 법칙(기둥)을 이른바 사유(四維) 즉 예(禮) 의(義) 염(廉) 치(恥)라고 내세우며, 이를 널리 교육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예와 의는 가시적이라서 그런대로 지켜져 왔으나 염(깨끗함)과 치(부끄러움)는 겉으로 잘 나타나지 않아서 어기는 일이 허다했다. 그 후, 염과 치는 한 단어가 되었고, 지금도 흔히 ‘염치를 알아라’ 또는 ‘염치 없다’라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말하는 ‘도덕성과 청렴성의 의심’은 바로 이 ‘염치 없음’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한편,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으로 태어난다고 보았다. 그의 인성론이다. 그 가운데서도 사단론(四端論)은 유가의 핵심 화두였다. 남의 어려움을 보고 측은하게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의 근본이고, 의롭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의 근본이며, 사양하고 양보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의 근본이며,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의 근본이라고 가르쳤다. 이런 본성도 사회가 타락하면 나약해지고, 마침내는 시들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부단히 자성하고, 수신할 때만이 좋은 본성을 지킬 수 있다.
관중은 교육을 통해서 사유로 대표되는 윤리사상을 강조하려는 생각이었고,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잘 개발하면 왕도 정치 즉 이상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같은 훌륭한 동양사상이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지가 오래이다. 유교가 유명무실해진 데다, 일본 제국주의 통치와 역대 독재정권을 거쳐오면서 정신보다는 물질을 우선시하는 황금만능주의가 사회의 지배적인 화두로 자리 잡은 탓일 것이다.
요즘 많은 공직자들의 처신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홍수 피해로 온 나라가 걱정이 가득한 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 피해 지역에 들어가 태연하게 골프를 즐기는 국회의원이나, 전임자의 인사 결정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특정 지역을 싸잡아서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 민선시장이나, 국무총리가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러 간 자리에 술에 취해서 나타나 횡설수설 했다는 국회의원 등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들이다. 이런 일련의 망언과 독직 행위의 장본인들은 머리는 뛰어나지만 어려서부터 사유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사단의 뜻을 모르는 출세지상주의자들이다. 정말로 자질이 부족한 공직자들이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어찌 이런 한심한 인간들이 버젓이 공직자 노릇을 할 수 있으랴.
세기가 바뀌었다. 선진 한국으로 도약하자면 먼저 공직자들이 대오 각성해야 할 일이다. 정신문화는 저급한 수준인데, 수출만 잘 한다고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앞으로 염치를 모르는 사람은 공직에 나서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