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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늘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아침햇살은 따스하고 찬란하지만 저녁노을은 그윽하고 아름답다. 아침햇살은 눈부시도록 밝지만 저녁노을은 그윽하고 깊다. 아침햇살은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지만 저녁노을은 모든 것을 품어준다.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수고했다고 이제 지친 몸과 분주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쉬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저녁노을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는 이들의 삶이 고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말이다.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것만이 하루의 삶을 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불고 멈추는 것도 그러하다. 바람 불어 열매 떨어지고 꽃잎 날아가는 것도 나뭇잎 흔들리고 씨앗이 날아가는 것도 모두가 자연의 중요한 변화들이다. 사람들만이 이 변화를 종종 잊고 지낼 뿐이다. 모르고 지낼 뿐이다.
오늘 아침도 바람이 부는가 보다. 창 밖에 있는 여린 졸참나무가지가 흔들린다. 아직은 어리고 여린 졸참나무이다. 그러나 수십 년의 세월을 말없이 지키는 동안 가지도 제법 굵어지고 나뭇잎도 더욱 무성해졌다. 별 탈 없이 잘 자라기만 한다면 천 년의 세월을 살게 될 졸참나무이다. 마당에 심어 놓은 나팔꽃도 바람에 흔들린다. 그 모습이 ‘나를 보아 주세요’하며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 같다. 봄에 심은 나팔꽃들이 정말 많이 자랐다. 마당 한 쪽은 모두 나팔꽃이 차지하였다. 나팔꽃 동네이다. 그 빛깔 또한 제각색이다. 개망초꽃이나 토끼풀꽃처럼 희고 흰 속살을 부끄러운 듯 드러낸 녀석도 있고, 진달래꽃처럼 선홍빛 속살을 드러낸 녀석도 있다. 동백꽃처럼 붉은 속살을 내보이는 녀석도 있다. 금강초롱과는 달리 보랏빛 속살을 은은하게 드러내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그런 녀석들은 늘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기 마련이다. 졸참나무도 나팔꽃들도 모두 바람에 흔들리며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고 저녁을 맞는다. 하루를 보낸다. 매순간 변화하면서 말이다. 새로워지면서 말이다. 무엇인가 제 말을 전하면서 말이다. 제 삶의 흔적을 이 땅에 남겨 놓으면서 말이다. 천 년의 세월을 살아갈 졸참나무만 제 말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일 년도 채 살지 못하고 가을이면 꽃잎 우수수 떨어질 나팔꽃도 제 마음의 말을 남긴다. 삶의 흔적을 남긴다. 졸참나무나 나팔꽃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숲도 매 순간 변한다. 변하며 제 삶의 흔적을 남기고 제 마음의 말을 한다. 아무리 새들의 노랫소리 요란하고 나뭇잎 무성해 햇빛을 찾기 어려운 여름 숲이라고 할지라도 이내 가을이면 나뭇잎 우수수 떨어진다. 그렇게 제 삶의 흔적을 남기며 세월의 깊이를 더한다. 깊은 숲으로 변하는 것이다.
여름 숲은 제 몸 성장하기에 바쁘지만 가을 숲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나뭇잎 떨어진 나무들은 더 이상 성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장을 멈춘다. 아니 나뭇잎이 떨어져 성장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무들은 성장을 멈추기 위해 나뭇잎들을 떨어뜨린다. 자라는 것을 멈추고 가만히 머물러 모진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새 봄을 맞이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스스로 성장을 멈춘 나무들만이 모진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아 새 봄을 맞는다. 새 생명을 품을 수 있다. 여리고 여린 새 잎을 틔울 수 있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숲도 그러하다. 숲에서는 모든 생명이 다 하나의 생명일 뿐이다. 이름 모를 풀도, 꽃도, 나무도 말이다.
얼마 전 들어섰던 여름 숲에는 유난히 죽은 나무들이 많았다. 세월에 무너지기도 하고 바람에 쓰러지기도 하였으리라. 쓰러진 나무들이 너무나 많아 일일이 어루만지며 마음 전하기 어려워 발걸음을 재촉하는 중에 마음으로 스며드는 나무가 있었다. 완전히 분해되기 직전의 상태이다. 단단했던 몸은 푸석푸석 바수어져 내린다. 몸의 한가운데는 완전히 파헤쳐져 부서져 내리고 있다. 그 한가운데 아주 작은 잎이 돋아 있다. 이 여린 잎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는가 보다. 제 말을 전했나 보다. 여린 잎을 바라본다. 한 몸에 두 잎을 달았다. 여리고 여린 잎 두 장이지만 참으로 아름답다. 대견하다. 참으로 장하고 장한 여린 잎이다.
이 여린 잎도 언젠가는 큰 나무로 자라겠지.
숲을 이루는 큰 나무로 자라겠지.
그렇게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다. 살아 있다면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큰 나무가 여린 잎으로 새롭게 태어나듯이 말이다. 숲에서는 주검조차도 아름답다. 아름다운 변화일 뿐이다. 그 변화로 인해 숲은 더욱 맑고 깊은 숲으로 자란다. 흐르는 물이 맑은 것처럼 말이다.
때론 사람들만이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자연의 진리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어떤 이들이 말한다. 참으로 한결같으십니다. 말하는 이는 칭찬으로 하는 말일지 몰라도 나는 가끔 몹시 불편하다. 변할 줄 모르는 놈이라고 한마디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거울 앞에 서니 제법 턱수염이 자랐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 모습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여리고 여린 새 잎이라도 틔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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