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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 24기’ 보존에 아낌없는 지원을

1790년(정조 14)에 편찬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는 군사와 무인들이 실제로 무예를 습득할 수 있도록 무예와 전투동작 하나하나를 그림과 글로 해설한 실전 훈련서이다. 무예24기에는 신라 때부터 비롯됐다는 ‘본국검’ 등 우리 전통무예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무예와 심지어 일본의 검술인 ‘왜검’까지 포함되고 있다. 이는 임진왜란 초기 왜검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정조는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한 후 군사들에게 여기에 수록된 무예를 익히게 했을 뿐 아니라 과거시험의 과목으로도 활용했다. 특히 임금을 가장 가까이에서 호위하는 부대인 장용영 군사들은 이 무예를 가장 치열하게 익혔을 것임에 틀림없다.
정조의 수원사랑은 화성을 축성하고 최정예군사인 장용영 외영군사를 이곳에 배치하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득권층인 노론의 본거지 서울을 벗어나 수원에서 신진관료를 선발하는 문·무과 과거를 자주 치르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수원 화성 안팎에서는 무예24기를 수련하는 무사들의 함성이 우렁찼을 것이다. 그러나 1800년 정조 사후 노론이 다시 득세하고 장용영은 혁파되었으며 후기 조선은 정치적인 이유로 화성을 애써 멀리 놓아두게 된다. 사실상의 방치였다.
그로부터 2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수원에는 장용영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무예24기를 전파하기 위해 피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사단법인 무예24기보존회(이사장 우제찬)를 만들고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 화성행궁 앞에서 관광객과 시민을 대상으로 시연을 펼쳐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이렇듯 역사의 뒤안길에 가려졌던 무예24기가 양지로 나와 각광을 받게 되기까지는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다.
본지 지난 8월26일자 1면에 소개된 김영호 사무총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가슴이 찡하다 못해 숙연해진다.
김영호 총장을 비롯한 교련관, 단원, 그리고 무예24기 보존회 여러분들의 노력에 갈채를 보내며, 수원시와 경기도는 이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기를 당부한다. 왜냐하면 무예24기는 우리 전통무예로서의 가치가 있을 뿐 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소프트웨어로서, 관광객을 이끌어 들이는 충분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생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면 그것은 수원은 물론 경기도의 큰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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