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4 (수)

  • 맑음동두천 -1.8℃
  • 구름많음강릉 2.3℃
  • 맑음서울 1.4℃
  • 구름많음대전 2.2℃
  • 맑음대구 4.1℃
  • 흐림울산 4.5℃
  • 맑음광주 4.5℃
  • 구름많음부산 5.6℃
  • 맑음고창 0.2℃
  • 흐림제주 9.0℃
  • 맑음강화 -1.5℃
  • 맑음보은 -0.2℃
  • 맑음금산 0.4℃
  • 맑음강진군 1.7℃
  • 구름많음경주시 3.5℃
  • 맑음거제 3.2℃
기상청 제공

<11> 갈참나무 숲

최 창 남 글

늦여름 숲에 들어선다.
내 앞에 길이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 없다. 그저 그렇게 있을 뿐이다.
고개를 기울여 길의 끝을 바라본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될까.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지도 않은데 마음은 누구에게 라고 할 것도 없는 물음을 묻는다. 그저 저 혼자 묻는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될까. 이 길을 따라가면 갈 수 있을까.
마음 기울여 길을 바라본다.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이 길을 따라가면 내 그리움을 만날 수 있을까. 지나 온 삶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잃어버린 삶의 날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늦여름과 가을 사이로 난 숲길이다.
그 숲길을 따라 걷는다. 나뭇잎 몇 장이 낮은 바람을 타고 떨어진다.
나처럼 성질이 급한 녀석들인가 보다. 아직 가을이 오지도 않았는데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저도 조금은 멋쩍었던지 살며시 내려앉는다.
다소곳하다.
나뭇잎을 바라본다.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벌써 떨어져 내렸니. 아직 가을이 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기야 빠르다고만 할 수는 없다. 사람 사는 숲 밖 세상이야 아직은 어수선한
늦여름이지만 숲은 벌써 가을이다. 가을을 잔뜩 품은 채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늦여름의 숲은 늘 부산하고 어수선하다. 무성하고 풍성했던 날들에 대한 이별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여름날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이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늦여름 숲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수런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짧은 만남에 대한
한 숨 섞인 아쉬움도 있고 긴 헤어짐으로 인한 가슴 아픈 이별도 있다.
어느 새 지나가 버린 여름날에 대한 회한도 있고 다가 올 가을날에 대한 설렘도 있다.
지나 온 날들을 돌아보며 깊은 회한에 젖어 스스로 탄식하며 흘리는 눈물도 있고
다시 만날 날들에 대한 희망 섞인 바람도 있다.
이런 저런 이별과 마음의 수런거림으로 인해 늦여름 숲은 언제나 어수선하다. 부산하다.
이런 저런 수런거림으로 가득한 늦여름의 숲길을 걷는다.
이 길을 따라가면 인생의 남은 날들을 볼 수 있을까. 만날 수 있을까.
이 길을 따라가면 이제라도 온전히 제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그리움 품어 안을 수 있을까.
그 길을 따라가도 갈참나무 숲 밖에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에 대고 묻는다.
아무리 그 길을 따라가 보아도 제 삶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마음에 대고
묻고 묻는다.
이 길을 따라가면 너를 만날 수 있겠니. 너를 만날 수 있겠니.
숲이 하는 말이 멀리서 들려온다.
마음 길 따라 가면 나를 만날 수 있어요.
아무리 깊고 깊은 숲 속이라고 할지라도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길은 있다. 다니지 않아
길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다니기만 한다면 아무리 깊은 숲이라고 할지라도 이내 길이
열린다.
마음 길 따라 숲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보이지 않던 숲길이 눈앞에 나타난다. 길이 열린다.
그러나 늘 다니던 길이라고 할지라도 잠시 다니지 않으면 잡초 우거지고 무성해져 이내
길이 아니게 된다. 예전에는 그 곳이 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없게 된다. 늘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다닐 수 없는 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숲 사이로 난 길이란 그런 것이다.
마음 길 따라 열리고 닫히는 것이다.
숲은 숲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걷는 것이다. 마음 길 따라 걷는 것이다.
숲길을 따라 걸으면 갈참나무 숲을 만날 뿐이지만 마음 길 따라 걸으면 갈참나무 숲에서
자신의 삶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나 온 모습도 살아갈 모습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숲길만 마음 길 따라 걷는 것이 아니다. 삶도 마음 길 따라 걷는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갈참나무 숲이 보인다.
꽤나 걸어왔나 보다.
갈참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린다. 나를 반기는 것일까. 저들도 깊은 숲 속에서 홀로
외로웠나 보다. 내가 그리웠나 보다. 고개 기울여 내 마음에 대고 제 마음을 부비는 것을
보니 말이다.
갈참나무 숲에 기대어 하늘을 본다.
갈참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참, 하늘도 붉다.
갈참나무도 타는 듯 붉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