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몇 십 년 전만 해도 그곳에선 고흐나 피카소, 마네와 같은 유명한 화가가 되는 꿈을 안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그들의 대부분은 관광명소가 되어버린 그곳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통해 수입을 얻기 위해 몽마르트 언덕의 화가로 활동한다고 한다.
관광명소가 되기 이전에, 작가적 관념을 가지고 괴팍할지언정 창조적으로 순수예술에 매진하는 화가의 모습을 기대하고 몽마르트를 찾는다면 분명 실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풍경을 비판적인 시선으로만 봐선 안된다. 왜냐하면 전자와 후자 모두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명한 화가가 되려 했던 것과 적지 않은 수입 때문에 활동하는 것 모두가 자본주의와 관련돼 있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화가들이 그림만 그리는 줄 안다. 그리고 대중매체를 통해 화가의 삶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대중은 화가들이 아무 걱정 없이 작품 활동을 하고 전시회를 하며 풍족하게 살아가는 줄 안다.
필자의 경험을 돌이켜봐도 필자의 직업을 화가라고 밝히면 이를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부러워하는 것이 대부분의 반응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화가는 매우 고달픈 직업이다.
이중섭이나 고흐 등을 보아도 그렇다. 그들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가다 가난 속에서 생을 마쳤다. 지금이야 자신의 고통스런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지만 그네들의 삶이 행복했다고 단정할 순 없다. 이러한 현실은 현재에 와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화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개인에게 작품구입 등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와 감동없이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구매를 결정하기에는 그 가격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미술전시관을 찾아가는 것 조차도 상당한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개인에게 작가들의 순수예술지향의 길을 열어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수가 있다.
미술은 그저 진열 또는 과시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정책적으로 문화예술발전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거의 일반화되어 있는 미술관 전시 이외에도 일반인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미술축제를 개최한다든지, 공공기관이나 의회 등의 공적인 공간에 미술작품을 구입한다든지, 지역 미술의 역사를 정립하는 미술관을 건립한다든지 등등의 공적인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물론 중앙정부에서는 미술은행 제도를 통한 구입과 작품대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 단체에서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또한 1년에 작품구입비 예산을 보아도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미술전시 또는 미술 작품 구입 등을 통해 시민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미술을 접하고 의사소통 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에서 선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파리 몽마르트 언덕과 같이 청계천에도 많은 미술품들이 설치되고 공연도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시에서 허락받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한다. 좋은 현상이다.
수원도 여러 공공기관에서 미술전시를 하며 문화예술도시 건설에 주력하고 있는데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청계천처럼 수원천도 다시 맑아져서 사람들과 미술작품들과 화가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곳이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