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에 갇히고 산에 갇히어 갈 곳도 없는 숲 속 호수가 어찌 저리도 맑을 수 있을까. 내가 모르는 어떤 곳으로 저 혼자 흘러가기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고 있는 걸까. 흘러가고 있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
물고기들이 지난다.
그 모습이 참으로 유유하다. 숭어다. 저 숭어는 어떻게 이 숲 속 호수에 들어왔을까. 누군가 놓아주었을까. 내가 모르는 길을 따라 흘러 들어왔을까. 어찌나 맑은지 물속이 환히 들여 보인다.
숭어가 지나는 길을 따라 가볍게 흔들리는 수초들의 미세한 움직임도 느껴지고 수초 위에 앉아 한가로이 졸고 있는 청둥오리 새끼가 만들어내는 잔물결도 그대로 전해진다. 숭어와 청둥오리 새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 모를 수초만 잔물결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호수 한가운데 구름도 가득하다.
구름이 흐른다.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호수에서도 구름이 흐르고 있다. 구름뿐이랴. 소나무도 전나무도 그득하고 상수리나무 또한 가득하다. 없는 것이 없다. 산도 그 안에 들어앉았다.
산이 깊으면 산이 품고 있는 호수도 넓고 깊다.
깊은 숲은 깊은 산을 만들고 깊은 산은 깊은 계곡을 만든다. 계곡이 깊으면 흐르는 물도 깊게 흘러 넓고 깊은 호수를 만든다.
그렇게 산이 품어 이루어 놓은 호수가 산을 품고 있다. 호수 안에 산이 있다.
수많은 생명들이 깃들어 사는 산이 호수 안에 깃들어 있다. 산이 품은 호수이기에 산을 품을 수 있었으리라. 호숫가에 늘어선 나무 숲 때문이리라.
나뭇잎 무성하고 나뭇가지 드리워진 호수에는 깃들어 사는 생명들이 많은 법이다.
드리워진 가지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그늘로 인해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쉴만한 안식처가 되기 때문이다.
호숫가에 앉는다.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야 가을이 오려나보다. 잔바람에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을 보니 말이다.
호수를 바라본다. 호수를 바라보며 지나온 날들을 만난다.
왜 그렇게 모질게 살았을까.
제 삶 하나 품어 안지도 못하면서 왜 다른 이들의 삶을 그렇게 품어 안으려 했을까.
어쩌면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나무 숲 드리워진 호수이어야 많은 생명들이 깃들어 살 수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 말이다.
품는 것이 아니라 깃들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으니 말이다.
깊은 숲이 깊은 산을 만든다는 것을 몰랐으니 말이다.
깊은 산이 맑고 깊은 호수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 말이다.
사랑 없이는 마른 풀 하나 자라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으니 말이다.
사랑 없는 신념으로는 시든 풀 하나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몰랐으니 말이다.
바람이 불어오는가. 바람이 불어오는가. 잔물결이 인다. 불어오지 않는 듯 바람이 불어온다.
느낄 사이도 없이 바람이 스며든다. 산에, 숲에, 호수에, 내 몸에 스며든다.
바람이 불어오고 있어요.
바람이 불어오고 있어요.
바람이 느껴지지 않아요?
마음으로 느껴 보세요.
그러면 바람을 느낄 수 있어요. 바람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어요. 바람이 남겨 놓은 글도 읽을 수 있어요. 내 몸에 이는 잔물결을 보세요. 바람이 남겨 놓은 글들이에요. 바람이 남겨놓은 마음의 말들이에요.
무슨 말인지 들리세요? 바람이 남겨 놓은 마음을 말을 들으셨어요?
마음을 호숫가에 내려놓고 일어서려는데 호수 안에 내가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호수 안에 내가 있다. 웃는다. 호수 안에 있는 내가 나를 보고 웃는다.
호수가 웃는 듯 웃는다. 미소 짓는다. 나도 호수 안에 서 있는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미소 지으며 말한다.
어리석었던 지난 날들을 용서하라고 말한다. 용서하라고 말한다.
잔물결이 인다. 바람이 부는가 보다. 일어나 걷는다. 호수를 지난다. 호숫가를 걷는 내 등 뒤로 바람이 따라온다. 소리도 없이 따라 온다.
못 다한 마음의 말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보다. 바람 따라 나뭇잎 우수수 떨어진다.
그렇게 가을 산은 깊어지나 보다.
호수도 깊어지고 내 마음도 깊어지나 보다.
내 마음도 깊어지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