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기전음악제’가 3회째 행사를 치렀다.
‘난파전국음악콩쿨’과 ‘난파음악상’을 수상한 쟁쟁한 신인들의 연주회와 시상식이 열린 자리다.
3회 째인 ‘기전음악제’에 대비 두 대회는 38년 이상 된 유구한 이력을 가진 행사들이다. 세 가지 행사들이 별도의 행사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전 ‘난파음악제’ 그대로다.
‘난파전국음악콩쿨’과 ‘난파음악상’은 ‘난파음악제’가 해체되면서 떨어져 나왔고, ‘난파음악제’를 ‘기전음악제’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3년 전쯤 홍난파의 친일논란이 수면 위로 불거지면서 도와 주최 측이 ‘울며 겨자 먹기’로 내린 처방이었던 셈이다. 도 입장에서는 ‘난파’라는 민감한 이름에 ‘돈’을 들인다는 것이 다소 거북했던 모양이다. 어쨌건 40여 년을 바라보는 행사는 그렇게 ‘기형적’ 모습으로나마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홍난파는 1898년 수원(水原)에서 태어났다.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음악학교에서 2년간 수학한 후 귀국, 1920년 지금도 우리의 귀에 익숙한 ‘봉선화’의 원곡인 ‘애수’를 작곡했다. 이 무렵 잡지 ‘음악계’를 발간했으며, 소설 ‘처녀혼’, ‘폭풍우 지난 뒤’ 등도 발표하여 문학적 재질도 보였다.
그의 일련의 행적 속에서 친일에 대한 증거들이 불거지며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를 친일파로 규정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논란들을 뒤로 하고 지난 4월에는 그의 음악적 업적을 기린 연보가 발간됐다. 국내 음악인으로서는 처음 발간된 연보라는 점, 홍난파에 대한 팽팽한 입장차를 보였던 한국음악협회경기도지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함께 만든 책이란 것이 흥미롭다.
이런 가운데 화성시는 ‘홍난파 생가 꽃동산’ 사업을 재추진 한다는 입장을 최근 밝혔다. 친일의 행적에 대해 아직은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연보를 통해 보여진 그의 음악적 업적을 재조명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생가 복원 사업의 재추진, 의미 있는 연보의 발간. 이런 가운데 ‘기전음악제’만이 묘한 모양새를 이어가는 것이 애처로울 따름이다.
이번 ‘기전음악제’의 2부 행사는 볼쇼이 오페라 주역가수들의 무대로 꾸며졌다. 콩쿨과 음악상이 빠진 자리를 매우기 위한 의도였겠지만, 뜬금없는 볼쇼이무대가 무슨 의미가 있는 지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행사의 기형적 명맥유지가 안타깝기만 하다. 애처로운 모양새는 비단 ‘봉선화’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