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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에 빠진 자본주의 그늘

윤 한 택 경기문화재단 전통문화실장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2006년 5월 정신적 패닉 같았던 지방선거, 그 후유증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하려는 듯 잔인했던 더위, 그 패닉과 더위로부터 위안을 얻으려고 운명의 사선을 넘은 님을 찾아 떠났던 가평에서의 열사의 휴가. 그 열사의 끝은 우이 선생님의 오랜 영어생활을 뒤늦게 아쉬워하는 듯 성공회대학교 교정에 궂은비가 내려 지친 내 마음을 야릇하게 적셔주고 있었다. 지난 근 20년간 지나오신 스승으로서의 생활을 뒤돌아보며 많은 지인들과의 관계 맺기가 끝나고 피날레는 예의 그 바다 노래.
세상과 불화한 대가로 12척 담장 속에 갇혀 한 맺혀 그리던 자유, 그 묘한 여운을 자아내며 재소자들의 눈시울을 적시던 동요. 세월 지나 다시 찾은 담장 밖 자유 속에서 그 동안 만끽하고 있었을 세인들에게 들려주었던 담장 안 비원의 노래에 그들이 보이던 재소자와 똑 같은 눈빛에 대한 새삼스런 발견. 그런 사연에 공감하던 터라 가끔 혼자서 나지막하게 읖조려 보기도 하고 노래방에선 일부러 찾아 불러보기도 하던 이 노래가 유독 이날만은 달리 들려왔던 것은 이즈음의 세태 탓이었다.
지난 열사의 휴가 내내 라디오 뉴스로 흘러나왔던 바다이야기가 그 주범이었다. 그 일만광장을 너무나 숙연하게 장식했어야 할 ‘바다로 간다’의 리듬이 인간을 탐욕과 파멸의 구렁텅이로 풍덩 빠뜨린 바다이야기의 씁쓸한 이미지와 겹치면서 엉망이 되어 선생님에게 영 송구스러운 마음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이 황당함을 어찌하랴!
이 무슨 해괴한 일이냐, 정신을 차려 긴급히 사태를 수습하라. 저 가슴 속 지상명령에 심호흡하며 차가운 이성의 회로를 더듬는다. 바다이야기가 무엇인가? 게임산업 아닌가? 그러면 문화산업? 굴뚝산업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그 부가가치 높다는. 그런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공직자에 대한 로비가? 그래 그렇다면, 그 투기성, 사행성 도박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면 그만이지 투기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과천 경마장도 강원랜드도 라스베가스도 너무나 당당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데.
아니, 자본주의의 원천이 모험, 도박이고 투기 아니었던가? 콜럼버스가 인도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던 것도, 미국 개척시대에 서부로, 서부로 몰려갔던 것도. 유토피아, 엘도라도의 목표가 황금을 향한 일확천금이었으니. 그것이 부도덕하다고? 그렇다면 그 정의로운 사회주의가 무너진 이유가 무엇인데? 사회적 소유니 계획이니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성이니 초국적 투기자본이니 하면서 자유로운 시장, 유통, 서비스, 이것들 틀어막아 놓았던 탓도 크지 않은가?
이쯤 되면 다시 바다이야기의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만한 창업자본과 이에 상응한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게 바보이고, 또 그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 것이 무능함이지. 또 설사 일확천금을 노리고 들어가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결국 파산과 자살로 이어졌다 하더라도, 그런 악마의 소굴에 끌려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란 말도 ‘거지 아빠’의 궤변에 불과할 뿐.
다시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자본주의란 기생체제는 우리의 자발적 의지를 넘어 강제되는 체제임에 틀림없을진대 우리 개인의 기호와 관계없이 바다이야기에의 참여도 우리에겐 당위일 수밖에 없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이 사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우이 선생님이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은 ‘바다’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빗방울 하나씩 산봉우리에 떨어져 온갖 쓰레기, 오염물질에 시달리며 산하, 마을을 흘러내려간다. 거기에는 ‘바다이야기’ 게임도 있다.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그들을 꾸짖지도 않고 그렇다고 오염되지도 않으면서 정화하여 가장 낮고 깊고 넓어서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는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바다이야기는 이렇게 정화되어 바다에 살포시 안긴다.
기생관계 속에서 과대망상과 자포자기의 피동적 양극단을 극복하고 주체적으로 기여하며 상생을 실천하는 이 길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길게 휘파람으로 ‘바다로 간다’를 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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