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공기를 어지럽게 가르는 청소차의 경보음, “검정색 승용차 2056 차 빼세요.”
신경질적인 확성기 소리, 잠시 후 밖은 잠잠해지고 다시 평온의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이 골목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주기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오늘 새벽은 사정이 달랐다.
청소차의 경보음과 승용차를 이동시키라는 확성기 소리가 십여분 간 계속되더니 고성이 오고가며 서로가 “네 탓”이라며 삿대질까지 하는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사건의 내용을 살펴본즉 청소차가 쓰레기를 수거하기 위하여 양쪽으로 주차되어 있는 좁은 골목길을 어렵게 삼백여m까지 진입하였는데 문제의 승용차가 이중으로 주차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른 승용차의 통행은 가능하나 대형 청소차는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불법 주차한 승용차의 주인과 인근 주민들이 합세하여 청소차 운전기사를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후진하여 되돌아가면 될 것이지 새벽부터 시끄럽게 왜 경보음을 울리며 난리야.”
승용차 주인이 욕설을 퍼부우며 승용차를 이동시키자 청소차 운전기사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골목길을 빠져 나갔다.
오늘 아침의 사건은 누구의 탓일까? 소음을 일으킨 청소차? 아니면 불법으로 주차한 승용차?
순간,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손을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이 시끄러운 싸움의 어느 편도 들어주지 못한 것은 분명 서로간의 이견에 있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성숙하지 못한 의식의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본래 조용하고 차분한 민족이었다.
품앗이나 두레제도를 보면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예의와 질서 의식이 높은 민족이었다.
가족구성원은 물론 온 마을 사람들의 상황을 내 일처럼 이해하고 돕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산업구조가 1차 산업중심에서 2차, 3차 산업중심으로 바뀌고 급격한 도시집중화 현상으로 공동사회에서 핵가족화로, 그리고 개인주의로 심리적 정서가 변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주의가 보편화되고 타인과의 대화를 무시하고 심지어 회피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이 같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로 인하여 의식구조가 성숙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70년 이후 빠른 속도로 변모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이 미처 마련되지 않았고, 사람들의 의식이나 생활 습관도 개인을 중심으로 한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골목길 불법주차사건의 경우도 그 곳은 분명 주차선 외에 주정차가 금지된 고시구역이었다.
한 사람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전체 주민의 생활이 담보될 수 없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의 불법주차로 인하여 전체 주민이 경보음에 시달리고 청소차는 이십여분 간 시비 속에 휘말려 노동력이 낭비되고 골목의 통행기능을 마비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불법행위는 크기와는 관계없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훔치는, 어쩌면 무형의 도둑질과 같은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은 행복한 삶을 단축시키고 비용의 증대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너무 과장된 표현인지는 모르나 불법주차 시비의 논란이 청소차였으니 다행이지 만약 화재가 발생하여 소방차의 진입이 지연되거나 진입하지 못할 경우 일어나는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언젠가 모 종교단체에서 “내 탓이로다”라는 운동을 전개한 적이 있다.
이 운동은 유행성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영원히 권장해야 할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때, 우리 사회에서 불신과 갈등은 사라질 것이다.
정 승 렬 <경기도의회 공무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