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현재 한국인 남자 평균 수명 73세, 여자 80세. 아저씨같은 할아버지, 청바지 입은 할머니.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키워드다. 은퇴후에 오히려 더 많은 인기를 누리며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실버의 꿈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다. 세계적인 장수국가인 일본에서 실버 산업이 번창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일본적’인 현상이면서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하겠다. 아울러 이는 한국의 미래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인의 수명 연장에 따른 젊은 실버의 등장을 곧바로 실버 산업과 연결짓는 것에는 저항감이 생긴다. 그들을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의 주체로 돌려세우는 듯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비 능력이 뒤떨어지는 이들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테니까. 더구나 노년층을 위한 충분한 사회보장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도 않은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맘 놓고 사용하기에 다소 성급한 말로 들린다.
은퇴한 노년의 삶을 더욱 의미있게 해주는 것은 ‘실버산업의 소비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로서의 삶이라고 본다. 실제로 은퇴 후에 종교단체나 지역 커뮤니티, 동호회, 향우회, 동창회 등에 소속되어 자원봉사자로서 활기찬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도 많다.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한 퇴직 공무원은, 지역 등산 모임에 가입하여 정기적인 산행으로 건강을 다지는 한편 아파트 주변 등산로를 가꾸는 자원봉사활동을 꾸준히 전개하여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기도 하였다. 또 30년의 교직생활 경험이 있는 한 노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동대표가 되어 지역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한편, 아파트 단지내에 ‘서당’을 열어 동네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한자와 붓글씨를 가르치고 있다. 그밖에도 독거노인들에게 연탄을 제공해 주는 향우회, 빈민촌 어린이 공부방을 후원하는 종교단체 등 은퇴자들이 모범을 보이고 있는 자원봉사활동의 많은 사례들이 있다.
이들은, 청장년기의 삶이 자신의 것을 모으는 삶이었다면 노년의 삶은 자신의 것을 베푸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오랜 사회생활 속에서 쌓은 삶의 경험과 지혜와 노하우가 있다. 노년층의 건강한 가치관과 인생경험이 그가 속한 지역 사회와 지역 시민단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이는 지역사회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아파트 단지의 동대표회장이나 각 행정동 단위 주민자치센터 위원으로서의 일뿐만 아니라 지역 시민단체의 대표나 자문위원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특히 지역 시민단체의 경우 활동 연령층이 비교적 젊은층이 많은데 여기에 지역의 원로가 힘을 더한다면 보다 견고하고 안정감 있는 시민단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역의 환경파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지역의 시민운동단체인 환경운동단체 뿐만 아니라 노인층이 주 활동연령층인 아파트연합회, 녹지보존회, 산악회 등이 연대하여 환경보존운동에 앞장 선 사례도 있다. 그리고 난개발 지역의 교통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걷기대회에 각 아파트 단지별 실버 군단이 형형색색의 피켓을 만들어 운집하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출퇴근으로 고생하고 있는 청장년층보다 오히려 은퇴한 노년층이 더 많이 참석한 그 집회 현장에서 한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막히는 도로에서 젊은 사람들이 밥벌이 하느라 고생하고 있으니 이런 일에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인간의 평균수명 연장에 따라 점점 증가하고 있는 노년층을 실버산업의 소비 대상이나, 젊은층이 부양해야 할 짐 정도로만 치부해버리는 것은, 젊어지는 노년층이 지닌 생산력과 잠재력을 간과해버린 단견(短見)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우리의 삶을 든든하게 바쳐줄 은퇴자들이 잠자고 있다. ‘적국에 사신으로 보낼만한 인물이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군량을 조달할 만한 인물이 바닷가에서 소요하고 있다’고 개탄했던 ‘허생’의 탄식은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우리는 은퇴한 실버의 사회참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유 경 <수지시민연대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