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체제 헌법 아래서의 대통령 선거는 후보에 대한 선호투표라는 말이 있다. 집권당 후보조차 자기 정당과 정부의 정체성과 정책성과로 득표하려 하기 보다는 그것들을 ‘밟고 넘어가야 승리한다.’고 믿고 있다. 이런 현상은 내년 대선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지금 노 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 간의 마찰과 갈등도 다 이런 현상의 시작을 알려주는 신호일 뿐이다. 이 같은 선거문화에서 가장 쉽게 선거운동을 하는 방법이 ‘지역 패권주의’를 동원하는 길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 한 마디면 특정 지역의 표를 죄다 모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패권주의’라는 망령이 내년 내내 설치고 다닐 것이다.
‘지역 패권주의’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네이버 닷컴 지식in에서 ‘지역 패권주의’를 치면 첫 번째로 나오는 설명이 이러하다. “최근 선거 때마다 호남은 대단했다. 90%가 넘는 지지율로 새로운 비주류 대통령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 미디어에서는 심각한 패권의식이라고 비판했다. 과연 호남 사람들의 이러한 결집력을 누가 만들었을까? 바로 영남 패권주의이다.” 영남 패권주의의 희생자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호남인들이 죽어도 영남 당 후보를 찍어서는 안된다는 정서로 똘똘 뭉쳐서 투표한 결과가 김대중과 노무현의 당선이라는 설명이 된다.
사실 보통선거가 도입되던 초기에는 우리나라에 ‘지역 패권주의’라는 망령이 없었다. 자유당 치하에서도 없었고, 공화당 집권 초기에도 그런 일은 없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민정 이양을 마치고 두 차례의 대선을 치렀는데 모두 충청도 출신 후보인 윤보선과 대결했다. 두 선거 때마다 호남인들은 박정희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물론 근소한 차로 패한 윤보선은 부정선거였다고 불복하고 재선거 투쟁을 펼쳤지만 국민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영·호남이 대권을 놓고 건곤일척의 큰 싸움을 벌인 시기가 바로 박정희와 김대중이 대결한 1971년 4월 대선이었다. 민심이 멀어져 감을 알고 있던 박정희는 패배에 대한 불안감으로 모든 권력기관을 총동원해서 부정선거를 획책하는 한편, 지역감정이라는 망국병마저 도입했다.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한 영남지방에 “전라도는 똘똘 뭉쳐서 김대중을 찍는다.”며 박정희 지지를 호소했다. 이것은 마타도어였다. 호남의 투표 결과는 김대중이 58.7%, 박정희가 32.7%로 나타났다. 이때부터 대선 때만 되면 영남인은 영남중심 당을, 호남인은 호남중심 당을 지지하는 투표지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지도를 만든 첫 번째 요인이 바로 지역 패권주의이다. 영남인은 우수하니 절대로 호남 당에게 대권을 맡길 수 없고, 영남인은 호남인을 무시하니 절대로 영남 당에게 대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믿음 같은 것이 생겼다. 호남인의 노무현 지지는 김대중 보호라는 전략적 선택이지 영남인에 대한 시각 변화는 아니었다.
내년 대선도 두 지역 출신의 후보가 각각 당을 달리하여 격돌할 것 같다. 영남 출신 후보나 호남 출신 후보나 모두가 자기 지역 표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지역 패권을 앞세워 고향 표를 싹쓸이할지라도 다른 지방의 표를 더 보태야 한다. 또 지역 패권주의끼리 다툰다면 메뚜기 이마빼기 같은 좁은 나라가 동서로 찢어지는 불행한 일이다. 호남의 후보가 가시화되지 않은 요즘, 한나라당이 호남에 가서 분주하게 뛰고 있는데 여기에 과연 진정성이 있느냐는 의문도 있다. 당 대표가 광주로 가서 지난날의 ‘호남을 차별했던 일’을 사죄하기도 하고, 5.18묘역을 참배하는 등의 활동은 다 호남 민심을 얻으려 함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한나라당 잠룡 이명박의 호남 지지율이 두 자리 숫자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영·호남인은 지난날의 지역패권주의에서 스스로 벗어날 때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선진국 반열에 들기는 커녕 통일도 이룰 수 없다. 해방 이후 수십 년 간 중앙권력을 장악했던 영남인과 지난 10년 가까이 중앙권력을 장악해서 한풀이는 했을 법한 호남인들인 만큼 이제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중앙권력 독식의 시대는 지났다. 그러니 내년 대선에서 이들 지역이 각각 한 발짝 물러선다면 다른 지역으로부터 존경도 받고, 동서화합의 단초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영·호남인만이 사는 나라가 아니다. 다른 지방의 인물도 선택할 줄 아는 지혜는 아름다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