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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 간다.
늘 머물러 있을 것 같던 시간이 흐르고 흘러 한 해라는 시간이 지나간다. 무한히 흐르는  시간이야 제 갈 길 따라 무심히 흐르면 그만이지만 유한히 흐르는 사람들이야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야 흐르는 세월을 무심히 바라보면 그만이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세월이야 시간의 강을 따라 너울거리며 흐르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아직도 마음을 제대로 닦지 못한 나는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무심할 수는 없다. 지나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으로 마음에 쥔 세월의 끝자락을 놓지 못한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다.
지나온 세월 모질게도 살아온 제 삶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리라.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사심 없이 내 삶 전부를 내어주려고 했을 뿐인데 말이다. 역사가 되었든 민중이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이웃이 되었든 그들이 달라는 것은 전부 내 주려고 했을 뿐인데 말이다.
무엇을 잘못했을까. 무엇을 잘못하여 제 삶을 헛헛하게 살아왔을까.
단 한 번뿐인 인생길을 낯모르는 이들이 세워 놓은 이정표 바라보며 메마르게 걸어왔을까.
제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리라. 제 사랑을 잃고 마음이 헛헛해졌기 때문이리라.
그런가. 서글프게도 그런가 보다.
제 사랑을 잃고 헛헛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도 시간은 흐른다. 삶이 지나듯이 시간이 흐른다. 결코 지날 것 같지 않던 무더운 여름날도 살 내리기 전에 지나고 떨어지는 나뭇잎들에 마음 시려하던 가을날들도 마음을 돌아보기도 전에 지난다.
그렇게 스치는 바람처럼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추스르는 겨울이다.
겨울은 춥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계절이다. 마음 깊어지고 따뜻해지는 계절이다. 그 따뜻함으로 인해 봄이 온다. 
겨울 숲에서 봄의 여린 숲이 자라나듯이 말이다.
겨울처럼 나무들이나 숲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에게 모진 계절은 없다. 그러나 겨울처럼 모든 생명들에게 수많은 생명들을 품게 하는 계절도 없다. 겨울 숲에 들어서면 겨울 숲의 깊은 적막함을 깨우는 모진 겨울바람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때로 지나는 이들이 외로울까 저어하여 저 혼자 울어대는 박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아주 가끔은 먹이를 찾는 큰오색딱따구리의 나무를 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겨울 숲에는 이런 소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겨울 숲을 지나며 눈을 감고 마음 기울이면 모진 눈보라에도 제 몸 움츠려 마음 따뜻하게 지키고 있는 나무들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 그 따스한 마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나무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여리지만 아름다운 새 싹을 틔우기 위해 새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무들의 그 마음 속에서 여리고 여린 봄 숲은 자라는 것이다.
봄을 맞는 겨울 숲처럼 나도 다시 봄을 맞을 수 있을까. 겨울 숲의 나무들처럼 다시 사랑을 마음 깊은 곳에 품을 수 있을까. 생명의 온기를  품어 안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정말 제 삶을 다시 오롯이 피어낼 수 있을까.
아침이다.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고 있다. 지난 밤 내내 눈이 내렸나 보다. 모처럼 내리는 함박눈이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였다.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하얗다.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정원의 나무들에도 눈꽃이 피었고 정원 곁의 쓰레기 더미에도 눈꽃이 피었다. 지나는 사람들의 종종걸음 위에도 눈꽃이 피어난다. 
점점 눈발이 세어진다. 늘 비어있던 하늘에 눈 가득하다. 창문틀에 눈이 쌓인다. 내 마음에도 눈이 쌓인다. 내 마음에도 눈이 가득 차오른다. 창문을 연다.
쌓여있던 눈이 소리 없이 떨어져 내린다. 열린 창으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찬바람에 몸을 실은 눈송이가 창에 부딪힌다. 방으로 들어온다. 내 손등에 닿는다. 앉는다. 차다. 선뜩하다.
찬바람이 방에 가득하다. 서늘해진다.
지난 밤 내내 토해냈던 뜨거운 숨결로 인해 텁텁해졌던 방 안이 서늘해진다.
지난 세월 내내 토해냈던 뜨거운 숨결로 인해 텁텁해졌던 내 마음 또한 서늘해진다.
이 겨울 들어 참으로 오랜만에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다.
함박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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