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의 삶에 대해 얼마나 넉넉한 시선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입과 머리로는 소수자의 인권이나 인간삶의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편협한 상식에 입각한 우리의 행동은 얼마나 많은 폭력을 아무렇지않게 자행하고 있는가? 굳이 톨레랑스(관용)라는 프랑스발 유행어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차이와 다름에 대한 이 사회의 통념은 인색하기 그지없다.
경기도립극단(예술감독 전무송)이 우리 사회의 각박함을 되비추는 연극 ‘미운오리새끼’를 4월 7일부터 15일까지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공연장 무대에 올린다. 연출은 3년전 도립극단과 ‘검찰관’ 공연을 한 바 있는 러시아 중견연출가 알렉산드르 세르게이비치 꾸진이 맡았으며 끼릴 다닐로프가 무대디자인을 담당했다.
러시아극작가 아돌프 샤피로의 작품인 ‘미운오리새끼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동화 안데르센의 ‘미운오리새끼’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안데르센과 아돌프 샤피로의 미운오리새끼는 사뭇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다양성에 대한 몰인정’을 이야기 하지만 샤피로의 작품은 가족간의 반목, 집단따돌림 등으로 표상되는 획일화된 잣대에 대해 하나의 해결점을 제시하고 있다. 안데르센의 미운오리는 폭력적 환경에서 탈출해 백조가 되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 작품에서는 화려한 백조로 성장한 미운오리새끼가 엄마오리를 만나러 돌아오는 것이다. 금의환향이자 화해의 몸짓이다.
가족구성원이 함께 걱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현실의 폭압적 힘에 대항하는 용기는 바로 가족애에서 싹튼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다수의 동화가 해피엔딩이듯이 이 작품도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찬 현실의 무게가 너무 가혹한 점에 비추어본다면 심드렁한 어조로 식상하다고 말해버릴수는 없는 해피엔딩이다.
연출자 알렉산드르 꾸진은 연출의도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다.
“미운오리새끼는 원래 백조였다. 원래 날 수 있는 존재 였다. 그러나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 속에서 자신의 본질이 잊혀져 가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나 결국 미운오리새끼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 아름다운 백조가 되어 돌아왔다. 과연 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지난 반세기 분배의 정의 실현이나 폭압적 정치지배체제 극복에서 희망을 찾았던 우리사회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소수자의 인권이나 다양성의 인정 등 한켠으로 밀쳐두었던 가치를 재발견 하는 일에 골몰한다. 하지만 아직도 차이와 다름을 관용하지 못하는 ‘덜됨’은 여전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예의를 되찾기 위해 이 봄, 어른들을 위한 동화극 한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입장료 어른1만5천원, 초중고생 1만2천원. 문의)031-230-34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