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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쟁이의 한’ 찾아 떠난 ‘구도의 길’

저자에게 듣는다-‘금강산, 최후의 환쟁이’ 유채림 작가

‘금강산, 최후의 환쟁이’
유채림 엮음
새울 출판/320쪽, 1만 8천원

6·25 전쟁 속 그림에 몰두했던 원로화가 한묵 화가 삶 다뤄
후속작은 ‘요령잡이’… ‘죽음’통해 새로운 가치 찾고파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글쟁이로 살아가는 것은 지독히 외로운 노릇이다. 머리칼 쥐어뜯으며 숱한 밤을 새우고, 취재를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만들어 낸 분신같은 작품이 무관심 속에 던져지는 것은 견디기 힘든 모멸감으로 다가온다. 잘나가는 소설가의 작품도 채 2천부가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소위 대가의 명찰을 달지 못한 작가들로서는 허탈한 마음만 깊어갈 뿐이다. 그래서 붓을 꺾는 작가들도 허다하다. 불행한 시대다.

하지만 그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몰이해와 가난, 이데올로기의 억압 가운데 비참한 생을 견뎌야 했고 오직 열정 하나로 고통을 이겨왔다. 소설가 유채림(47)도 열정 하나로 생을 송두리째 던진 글쟁이다. 그가 열정과 고집으로 네 번째 장편소설 ‘금강산, 최후의 환쟁이(새울출판사)’를 세상에 내놨다. 흐린 봄날 도시의 한귀퉁이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얼굴은 제대로 손질한 적이 없는 듯한 수염으로 덮여있고 몸피는 군살없이 말라보였다. “소설 쓰느라고 추풍령 골짜기에 쳐박혀 겨울과 봄을 났다. 폐가에 들어가 살았는데 물 데워 면도하기 어려워서 길렀던 털을 아직도 그냥 놔두고 산다”며 멋쩍게 웃는다.

‘금강산, 최후의 환쟁이’는 해방공간의 혼란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금강산에 숨어 그림에 몰두했던 한 화가의 삶을 다루고 있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원로화가 한묵씨를 모델로 한 이 소설은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금강산 오지에서 벌이는 처절한 싸움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유채림은 금강산에 대한 자료를 싸들고 추풍령으로 갔다. 금강산에 칩거한 환쟁이가 되어볼 수 없었기에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그런 고생 끝에 금강산 굽이굽이의 황홀한 묘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소설 속의 고통을 몸으로 겪어보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나이 오십이 가까워 오는 데도 말이다. 작중 인물의 삶을 추체험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소설 속에서 고스란히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로인해 그로서는 숱한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낯선 고장의 역 대합실에서 노숙을 하다가 지갑을 도둑맞기도 하고 산속에서 모진 추위를 견디며 극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고통을 끌어안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 삶을 펼쳐보이기 위한 그의 열정은 그렇게 구도자의 자세와 닮아 있다.

그는 자신의 소설 ‘금강산, 최후의 환쟁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설 쓴지 20년이 돼간다. 돌아보면 견디기 힘든 일도 많았다. 아내가 고생을 견뎌줘서 글을 쓸 수 있었다. 서사시집 한 권 내고 장편소설 세 권을 내는 동안 어려움이 컸기에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썼다. 일생을 그림에 바쳤지만 문화계의 패거리짓기 풍토에 밀려 뚜렷한 조명을 받지 못했던 화가 한묵씨의 이야기를 다뤘기에 비주류의 고뇌에 대한 감정이입이 쉬웠던것 같다.”

책을 내도 홍보조차 쉽지 않은 터라 조심스럽게 ‘좀 팔렸냐’고 묻자 ‘고생 좀 해서 쓴 작품이라 그런지 그럭저럭 나가더라’며 웃는다. 하지만 후배작가들이 출판사를 만나지 못해 작품원고를 처박아놓고 한숨만 쉬는 이런 풍토를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고 ‘글 써서 먹고살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구상하고 있는 후속작은 요령잡이(장사를 지내기 위하여 상여가 나갈 때에 요령을 들고 상엿소리를 메기는 사람)의 삶을 다룰 생각이라고 한다. 그들을 통해 우리네 삶 속에 자리했던 ‘죽음’을 다시 한번 뒤새겨보고, 우리 것의 가치를 찾고 싶다는 것. 그의 뚝심과 열정이 또 하나의 선굵은 작품으로 탄생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채림은 1960년 인천 출생으로 1989년 문예지 ‘녹두꽃’에 장시 ‘핵보라’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편소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그대 어디 있든지’, ‘서쪽은 어둡다’, ‘금강산, 최후의 환쟁이’ 등을 발표했다.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와 인천작가회의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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