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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조의 희말라야 여행기<7>

神이시여! 이 산행을 허락하소서… 히말라야 중턱 ‘하늘마을’

 

눈으로 덮인 산이 바로 눈앞에 있다. 입을 다물고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구름이 다시금 없던 일인 양 덮어버렸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사라져 간 사람들… 구릉의 한 박물관 안 히말라야와 함께한 ‘세르파족’의 역사를 보았다.

 

 

◆ 안개 덮인 롯지에서

너무 힘들었다. 조살레의 마지막 찻집에서 물 사는 걸 잊어버려, 오르는데 걱정이 더했다.

남체까지는 고도 800미터를 한꺼번에 올라 3천440미터에 달해야 한다. 3천 미터 전 후에 산소부족으로 인한 고산병이 많이 나타나는 걸 걱정했어야 했다.

물이라도 자주 마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탓인지 낮게 두통이 온다. 걸음마다 숨이 턱턱 막혀 온다. 걷기가 너무 힘들다.

참다 못 해 개울물을 마셨다.

오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정수제 없이는 마시지 말라고 하지만 목이 타들어가니 어쩔 수 없다. 일단 살고 보자. 남체(3천440m)가 눈에 들어온다. 짐을 팽개치고 싶다. 내일 당장 짐꾼(포터)을 구해야겠다. 이렇게는 올라갈 수가 없겠다.

히말라야의 산 중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큰 마을이다. 모든 집이 여행객을 위한 숙소라니, 그 만큼 이 높은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언덕 위 가장 높아 보이는 곳에 자릴 잡았다. 어제처럼 방을 구하려고 돌아다니지 않아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고 보니, 시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다.

 

1층은 식당이고, 층마다 샤워시설과 화장실, 세탁기를 갖추어 놓았다. 화장실과 수도꼭지가 함께 있던 팍딩의 작은 롯지와는 비교할 수 없다. 티베탄 브레드(짜파티를 녹녹하게 튀긴 것)와 계란 후라이, 블랙커피를 저녁식사로 먹었다.

밖에 마침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어 불을 빌렸다.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어둠 속을 흐르는 짙은 구름 위로 잠시 나왔다 사라지고, 또 잠시 나와 비추는 별들을 보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페인에서 왔고 일행들이 함께 아일랜드 피크를 오를 예정이며, 이름은 로렌서라고 한다. 담배랑 조살레에서 산 성냥을 어딘지도 모르게 잃어버린 이야기를 하자 그가 라이타를 건네주었다.

 

 

게스트 하우스 아래로 온통 백열등을 밝힌 집들과 창으로 나오는 불빛들이 가득하다. 안개가 다리를 훑고 지난다. 여행객들이 기대에 부풀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집들을 한 순간 안개가 뒤덮는다. 산언덕이 거무스름한 어둠 속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간혹 저 멀리서 잠시 빛을 내는 창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하늘 위로 별들이 손살 같이 스쳐 지나기도 한다.

 

담배 연기도 함께 안개 속으로 급하게 빨려들고, 바삐 마을 아래 언덕까지 검고 희뿌연 어둠이 덮이면서 잠겼던 마을이 다시 구름 위에 솟아 불빛을 내기도 한다. 추위에 얼른 방으로 올라왔다. 간혹 창을 열어 여울처럼 빠르게 흐르는 별들이 잠깐씩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군무로 정신을 놓고 있는 안개에 취한 탓인지 뒷골이 뻐근하게 아파온다. 말로 듣던 고소증세가 이불을 덮고 누워도 가시질 않는다. 밤새 뜬 눈으로 지샐 것 같다. 카트만두에서 산 우모복을 입고도 춥다. 추워서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게스트하우스라고 불리는 숙소는 산간에 자리한 것을 롯지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산장이나 민박집 같은 걸 생각해 볼 수 있겠다. 1인실이 있는데 화장실이 딸려 있는지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1인용 침대가 두 개인 트윈베드의 2인실 외에 낮은 비용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개의 침대를 늘어놓은 도미토리(dormitory)가 있다. 산악지대의 게스트하우스는 화장실이 안에 있지 않다.

 

높이 올라 갈수록 샤워시설도 없고, 샤워를 생각할 수도 없다. 따뜻한 물을 공급할 에너지원이 없고 겨우 태양열로 전등을 밝히고, 야크 똥을 말려 휴게실 겸 식당의 연료로 쓰기 때문이다.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워낙 차고 해 떨어지면 기온도 함께 뚝 떨어져서 찬물에 몸 담그는 건 생각하기도 두렵다.

◆ 산간마을로 떠난 작은 여행

고도 적응을 위해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몸을 적응시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루 이틀 더 머물며 주변을 돌아본다고 한다. 외진 산간마을인 쿤데(3천840m)와 쿰중(3천780m)을 돌았다. 벌써 수목한계선인지 집과 담이 돌을 쌓아 만든 것들이고, 밭의 가장자리 담장도 그렇다.

 

담과 담사이로 이어진 작은 길에 들어서니 미로 같다. 밭에서는 사람들이 괭이로 감자를 캐고, 벼랑에 가까운 언덕을 따라 하늘과 맞닿은 검은 봉우리 밑까지 밭을 일구었다. 저기까지 어떻게 올라갈까? 조용하다. 다니는 사람도 없고, 마을을 벗어나 달리 길이랄 것도 없는 능선을 따라 한참을 가니 히말라야뷰 호텔이 나왔다.

 

일본인이 만든 호텔이라는데, 날씨가 맑으면 저 멀리 산줄기의 끝에 에베레스트가 보인다고 한다. 지금은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입구에서 한국인을 만났다. 미스터 한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한 선생과 히말라야뷰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함께 내려왔다.

 

 

남체가 내려다 뵈는 언덕 끝에서 사진을 찍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제 보지 못한 전경이 가파르게 펼쳐져 있다. 세르파 족 최대의 마을이 벼랑 끝을 가득히 메우고 있다. 봉우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맞은편에 또 거대한 봉우리 하나가 가로막고 있고, 서로 마주한 채 급한 벼랑을 이룬다.

 

마을 맞은편의 구릉에 자리한 박물관을 돌아보니, 히말라야와 함께한 세르파족의 역사가 어렴풋이 보인다. 소박하지만 전통이 담긴 전시물들과 사진 하나하나를 꼼꼼히 돌아보았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사라져간 사람들의 사진도 있다. 마당에 나와 불탑 앞에 서니 남체 맞은 편 봉우리, 콩테가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꼭대기는 언제나 구름에 덮여 있어 이렇게 가까이 설산이 있는 줄 누가 알았겠나.

 

조금 전까지는 이렇게 높은 봉우리가 있는 줄 짐작하지도 못했다. 꼭대기가 눈으로 덮인 산이 바로 눈앞에 있다. 입을 다물고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구름이 다시금 없던 일인 양 덮어버렸다. 잠시 전에 눈으로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미스터 한의 세르파, 람바부가 콩테 봉의 높이가 6천184미터나 된다고 알려준다. 운무가 금세 남체 바자르 전체에 드리운다. 어둠이 깔린다. 짙은 안개구름 속에서 10미터 앞을 확인할 수 없다가 저녁이 다 되어 다시 시야가 트인다. 잠시, 이제는 어둠이 마을 위로 내리고 다시 어둠에 물든 구름이 거무스름하게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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