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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삶서 건져올린 알알이 초록빛 동심

원로시인 권오삼 6번째 시집-‘아낌없이 주는 나무들’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
권오삼 지음
지식산업사 출판/128쪽, 8천원
자연·사물소재 서정성 가득
동시 안읽는 세태는 삭막해

“문학엔 계급장 필요없죠”

휴일 쇼핑센터 서적코너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책을 사러 나온 엄마 아빠들이 많다. 아동도서 코너를 배회하는 이들은 열심히 ‘뭘 읽힐까’를 고민하며 분주히 책을 뽑아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부모의 마음은 무언가 좋은 책을 자녀들에게 사주고 싶지만 뭐가 좋은 건지 도무지 막막하다.

 

문학에 대해, 교육에 대해 나름대로의 소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경우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솔밭에서 바늘 찾는 심정으로 한참을 골라보지만 아이들에게 동시집을 사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동화는 비교적 판단이 수월하지만 동시에 대해서는 지식이 부족한 탓이다. 그렇게 동시집은 서점의 진열대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여름 가물 때
물 한 동이라도 준 일 있니?
아-니요
비바람 몰아 칠 때
한번이라도 지켜 준 일 있니?
아니요
그래도 가을되니
가져가라고
예쁜 열매 아낌없이 떨어뜨리는
밤나무, 대추나무, 도토리나무……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 전문)

최근 원로 동시인 권오삼(64)이 고학년 어린이를 위한 동시집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을 펴냈다. 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1975년 등단해 33년간 동시창작에 몰두해온 할아버지 동시인을 만나러 수원의 그의 아파트를 찾았다.

“뭐 장하게 한 게 있어서 나같은 게 지면에 얼굴을 드밀겠느냐”고 “열심히 좋은 작품 만들고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나 가보라”고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쳤던 늙은 시인은 그러나 80년대 참여문학진영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었고 ‘돈 안되는 동시‘에 온 생을 쏟아붓고 있는 고집스런 작가다. 그의 시 몇 편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려는 부모들이 많아져서 다행이긴 한데 동시의 경우 뭘 읽혀야 할지 고민스러운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말머리가 시작됐다.

“어머니들이 자녀에게 동화책은 사줘도 동시집은 잘 안사준다. 그 원인은 시를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작품의 질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70년대나 80년대에 견주어보면 아동문학의 주변 환경, 즉 출판 관계, 독자들(어린이·어른)의 관심, 발표지면 등은 월등하게 나아졌다. 때문에 동시집이 과거보다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숫자에 비해 읽힐만한 작품이 부족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찾아보면 좋은 작품도 많이 있으므로 다양하게 읽히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님이 먼저 읽고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방법을 택한다면 어린이 정서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그의 작품들은 자연과 사물을 소재로 재미있고 서정적인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의 동시집 ‘고양이가 내 뱃속에서’는 서정적인 시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깔깔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시들도 섞여 있어 인기가 많다.

경북 영덕의 작은 시골초등학교 몇 곳에서 16년간 교편을 잡았던 그는 교단을 떠난 뒤 소재찾기가 쉽지않다고 말한다.

“아이들과 어울릴 땐 생활에서 소재를 찾았지만 학교를 떠난 뒤 아이들의 생활과 문화도 많이 달라져서 내 작품의 소재가 자연이나 사물을 많이 다루게 되는 것 같아요. 후배 문인들 가운데는 현직교사로 있는 분이 많은데 아이들과 지내면서 아이들이 삶 속에서 소재를 찾는 일에 보다 적극적이었으면 해요.”

하지만 그의 시는 삶의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동심의 눈으로 포착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다. ‘아빠생각’이란 시는 그의 작품세계의 단면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은 실업자 된 아빠와 가정의 아픔을 아이의 시선을 통해 그려보인다.

엄마는/일 나가고/나는 학교 가고//갈 데 없는/아빠만/혼자 남아//신문 보고/밥 먹고/그담엔/뭘 하실까//공부하면서도/머릿속에서/떠나지 않는//아빠 생각(동시집 ‘고양이가 내 뱃속에서’ 중)

그는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아는 문학정신의 소유자다. 또한 그는 ‘아동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화답했던 ‘꿈꾸는 자’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 아동문학의 주류를 이루던 낭만적 순수문학과의 차별화를 위해 지난 89년 이오덕, 권정생, 이현주, 윤기현씨 등과 함께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를 창립해 상임이사로 활동했다. 그들은 당시 아동문학이 외면했던 어린이문제(인권, 교육 등)를 작품에 반영하기 위해 애썼고 그러한 노력이 현 아동문학계로 이어지고 있다.

낡은 교훈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다음의 시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모두 못과 같다면/너는 하나의/곧고 단단한 못이 되어야 한다//망치에 얻어맞으면/이내 몸을 꼬부리고 쓰러져버리는/그런 못이 아니라//망치에 맞더라도/딱딱하고 야문 곳에 부딪히더라도/온몸으로 뚫고 들어가/흔들리고 삐걱거리는 곳//흔들리지 않게 삐걱거리지 않게/굳게 버티어 주는/그런 못.(‘못‘ 전문)

그는 문단의 원로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엔 계급장이 필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작품 잘 쓰는 사람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짱’이라는 것이다. 문인은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어서 신인이든 중견이든 중진이든 원로든 작품을 발표하면 똑같은 자리에서 평가받는 게 마땅한 이치라고 강조하는 그는 왕성한 창작열로 노년을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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