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래 문헌사학자들이 주축이 된 전쟁연구는 많은 업적과 성과를 이룩했음에도 문헌자료에만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는 한계 때문인지 전쟁의 구체적 실상과 전개에서는 빈약한 측면을 노출하곤 했다.
고려가 건국 이후 처음 치른 전쟁이랄 수 있는 거란과의 전쟁만 해도 그렇다. 일반에 각인된 고려-거란 전쟁은 서희의 강동6주 담판과, 서희의 입에 '놀아난' 소손녕, 80만 거란대군이라는 키워드 정도가 고작이다.
이 키워드만 해도 사실 의문이 이만저만하지 않다. 과연 소손녕이 이끈 거란 80만 대군은 서희에게 농락당한 채 순순히 강동6주를 돌려주고 물러났을까?
안주섭(安周燮). 전남 곡성 출신으로 육사 출신인 그는 군에서 연대장과 사단장, 육군대학 총장을 거쳐 34년간의 군생활을 접고 지난 98년 예편한 뒤 김대중 정부에서 5년 내내 대통령 경호실장을 역임했다.
그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전쟁사에 관심이 많던 그는 만학의 열을 불태우며 지난 2002년 여름 명지대에 「고려-거란 전쟁사 연구」를 제출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이 논문을 토대로 출판된 단행본 「고려 거란 전쟁」(경인문화사)은 오랜 군생활을 겪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투철한 국가안보관'이 곳곳에 반영돼 있기는 하지만, 전쟁이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달리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우선 갖게 한다.
예컨대 저자는 기존 전쟁사 연구에서 문헌사학자들이 간과하기 십상이던 지형과 기상조건을 전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창으로 설정한다. 책을 펼쳐보면 마치 군대 작전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총천연색 각종 지형도가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나아가 위성사진까지 더러 동원해 전쟁에 임한 고려와 거란군의 대치, 공격, 이동상황 등을 점검하며 추적하고 있다.
전쟁에서 기상조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사례를 고려-거란 전쟁에서 저자는 증명하고자 한다. 예컨대 거란군은 장기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전투방식을 쓰지 않았다.
거란군은 통상 9월에서 12월 사이에 전쟁을 감행한다. 이는 거란의 유목생활 습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곡식 수확을 마치고 저장에 들어가는 9월부터 출병해야 현지에서 식량확보가 용이했으며, 12월에는 회군을 해야 다시 방목을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희에게 쫓겨난 소손녕 군대가 80만이었다는 고려측 기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황제인 성종이 친정한 제2차 전쟁 때도 거란군은 40만이었다고 하는데 동경유수에 지나지 않던 소손녕의 군대가 어째서 80만인가?
저자는 소손녕 군대는 많아봐야 6만명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고려 병제를 주목한다. 이에 따르면 도통을 임명하지 않은 거란 원정군은 6만명을 넘을 수 없다. 그러니 80만이라는 숫자는 고려가 과장한 것이다.
이처럼 기존 전쟁연구는 "개괄적인 정세 일반 또는 개인적 역랑 중심으로 접근"했다고 비판하면서 저자는 우선 이 전쟁에 대한 용어부터 '거란 외침'이 아니라 전쟁임을 당당히 선언하는 한편, ▲전쟁배경 ▲전쟁실체 ▲전쟁의 영향 ▲전쟁의 본질 등 네 가지 의문의 구명에 총력을 투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려와 거란 사이에는 종래 알려진 것처럼 3차가 아니라 모두 6차례에 걸친 전쟁이 있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240쪽. 2만3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