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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광대 30년… 하늘선 제가 왕이죠”

‘이시대 마지막 줄타기 명인’ 인간문화재 김대균씨

 

“어떤 사람이 그럽디다. 줄 잘 타면 빨리 출세할 수 있다고. 그런데 나는 9살에 줄에 올라 30년 넘게 줄을 타고 있지만 타보니까 별 볼일 없습디다. 매일 엉덩이나 터지고 줄광대라고 손가락질해대고…. 그런데 줄을 타면서 좋은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여러분들이 나를 올라다본다는 것이지요.”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줄타기 명인 김대균(41)씨는 판줄에 오르자마자 걸쭉한 재담부터 늘어놓는다.

부모에게 응석을 부릴 9살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재미삼아 타 본 줄타기가 평생 업이 된 김대균 명인을 지난 3일 과천한마당축제 공연에 만났다.

하얀 민복에 머리에 쓴 초립에 공작 깃털을 꼽고 연분홍 부채를 들고 잔노릇을 하던 모습과는 달리 간편한 체육복장으로 나타난 그가 다소 생소했다. 그는 5년째 한마당축제에 참가하는 단골 게스트였다.

“과천은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고장입니다. 김영철 스승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지만 문화전통의 맥을 이어가던 지역으로 타곳보다 애착을 갖고 있어 출연요청이 들어왔을 때 흔쾌히 응했지요.”

그의 줄타기 인생은 용인 한국민속촌에 근무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러 소형 판줄에 올라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한다지만 아무 생각 없이 올라섰어요. 그것이 긴 세월 외줄 하나에 매달리는 중요한 기점이란 의식은 전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요.”

이듬해 정식 입문했고 중요 무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된 김영철 선생을 사사했다.

2년째 접어들던 1979년 스승이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병 수발을 하면서 배움을 그치지 않았고 중학교 3학년이던 15살 때 민속촌에서 정식 데뷔 무대를 가졌다.

하지만 부모 못잖게 의지했던 스승이 1988년 작고하면서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

“정신적 지주였던 스승님이 타계하면서 줄타기가 시들해졌고 술과 담배를 배웠던 시절도 그때였습니다. 한마디로 만사가 귀찮았던 거지요.” 방황은 오래가지 않았다.딱 1년을 그렇게 보낸 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1300년을 이어온 전통놀이가 일제 때 끊어져 영원히 소멸할 뻔 했던 줄타기를 스승이 다시 잡은 맥을 유일한 전수자인 자신이 포기하면 영영 사라진다는 자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고 이는 진정한 명인으로 거듭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줄 위에서 잔재주나 부리는 차원을 넘어서 진정한 명인이 되기 위해 성우향과 이동안 선생으로부터 판소리와 줄소리(재담)를 전수받았다.

일제 때 사라진 판줄의 원형을 완전히 재현한 1991년 대한민국 국악제에서 복원시연을 가졌다.

그가 33세 되던 해인 2000년 김영철 스승의 대를 이어 무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되는 감격을 누렸다.

개인적으론 전수 장학생부터 이수자, 전수 조교자 외 예능보유자까지 4개 부문 최연소란 타이틀을 획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릴 적 유난히 우리 고유 전통문화를 좋아해 스스로 택한 길이지만 그 때의 감격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오랜 기간 몸담았던 민속촌을 1994년 그만둔 후 그는 전국 투어에 나서 지금은 연 60~70회 공연을 다니고 일본, 미국, 유럽 등 해외까지 진출했다.

김 명인은 현재 그의 아들 민재(13)와 그 친구에게 즐타기를 전수하고 있다.

지금도 줄에 오르면 긴장된다는 그는 “갈현동에 마련한 문화체험장이 줄타기 상설 공연장과 잣치기,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 학습공간이 조성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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