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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주민참여 모의재판

극단 城대표 극작가 김성열

실전같은 모의체험에 감정이입
피고인에 몰입 눈물·콧물 범벅


 

주눅 들어 있었다. 대문짝만한 글씨 ‘형사과’. 전화로 약속을 하였기에 좀 폼 나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쳐다보지도 않는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분주하다. 누가 형사고 누가 민원인인지 모르겠다. 겨우 용기를 내어 물어본다.

“‘모의재판’ 때문에 왔습니다.”

그랬더니 누가 불쑥 일어난다. 사건에 휘말렸거나 사건중심, 주변부에 있는 사연의 모양이 다를 뿐 올 수밖에 없는 시원찮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장소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말이다.

형사 1부,2부……20부 많기도 많다. 온통 세상이 사건 천지구나. 연극관객이 있을리 없지. 연극은 사건과 갈등이 아니던가. 연극보다 더 재미있는 정치판도 있고, 재미있다고 얘기하면 당사자들한테 혼 구멍이 날 사건들이 문자화되어 책상에 그득하다.

싸늘한 바람이 가슴속으로 후비고 들어온다. 드디어 찾았다. 또 가잔다. 내 먼지라도 떨어뜨려야 나오는 통로를 알 것만 같다.

복도에 쭈뼛쭈뼛 않아있는 군상들의 표정은 다 일그러져 있었다. 내 생애 처음와본 곳이라, 갓 잡아 올린 물고기 같이 마구마구 감각들은 요동을 치고 있었다.

책상위엔 서류뭉치가 높은 산을 이루어 마치 누군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5만 쪽 그 서류 속에 모든 것이 있다.

사회가 있고, 세상이 있고, 한 가족이 있고, 단체와 조직이 있을 터, 궁금했다.

그러나 더 알면 뭐하랴? 내 머리만 쥐가 날 텐데….

모의재판 시나리오를 받았다. 끔찍하다. 이 말이 이 말 같고 저 말이 저 말 같다. 연출이 상대방역(검사와 변호사, 판사)을 맡아 연습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모노드라마다. 또 증인은 증인석에서, 피고인은 피고인석에서 앉아서 대답해야만 한다. 액팅이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새로운 연극을 하는 것이다. 무대독회도 상대역은 있지 않은가?

재판 관람을 하였다. 판사님도 엄청나게 힘든 직업이란 것을 느꼈다. 인간이 인간을 재판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진데 어떻게든 해보려고 중점사항을 다시 묻곤 한다. 피고인의 형처럼 말이다. 참으로 온화한 얼굴이구나.

1차 리허설이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증인이 되고 피고인이 되는 것이다.

위축되어 온다. 진짜 피고인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검사님의 날카로운 분석과 질의는 방청석까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느낌으로 전달된다. 검찰 측 증인들의 성격이 시나리오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폭발할 수도 없고, 너무 억제해도 안되고, 꼼짝하지 않은 채 연기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모의재판 당일은 배심원까지 앉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외국 영화에서 본 것처럼 배심원들의 평의가 있고 평결이 있는 것이다. 물론 최종선고는 재판부가 내리는 것이지만 말이다.

2차 리허설까지 끝마쳤다. 그동안 검사님과 변호사님은 우리들과 눈도 안 마주친다. 분장은 물론 필요 없었다.

당일 날이다. 꽤나 많은 기자들이 특별히 개방된 재판석을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찍어댄다. 피고인을 맡은 배우는 감정몰입이 어려우니 죄수복을 입겠다고, 또 최후진술은 그 자리에서 그냥하기로 약속을 했다.

재판부가 들어온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배심원들은 일어서서 선서하여 주십시오.”

비록 모의재판 이지만 검찰과 변호인 측의 배심원 선정은 불꽃이 튀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배심원을 선정하기 위한 신경전이 팽팽했다.

“피고인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나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차례다. “증인 박민식씨지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자, 그럼 심문하시겠습니까?”

증인인 의사가 나온다. (휴정) 증인3이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들이다. 검찰의 질문을 잘 못 들었다며 다시 묻는다. 여 검사님이 좀 당황했을 것 같다. 증인4가 나왔다. 이웃집 여인이다.

“이의 있습니다.” “이의를 인정합니다.” “변호인께서는 증인이 직접 경험한 것에 대해서만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검찰 측 반대심문하시겠습니까?”

증인5가 등장했다. 감정을 넣어서 연기해야 될 대목이 나왔다. 지문도 있다. (잠시 울먹이다가) 피고인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 드디어 피고인 심문이다. 동정심과 연민의 정이 흐른다. 배심원들의 얼굴표정은 가지각색이다.

“최소한 30초 동안 피해자의 목을 누른 것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30초를 세겠습니다.”

재판정의 벽시계는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길고 더디게 초침이 움직였다.

“피고인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감정이 격해져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그냥 흘러내린다. 그래도 최후진술은 토씨하나 안 틀리고 다하고 있었다.

뒤에서 어떤 기자가 얘기한다

“끝까지 연기하는 거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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