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액권 화폐 도안 인물로 백범 김구 선생이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름지기 한 나라의 화폐 속 인물은 그 국가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상징적 인물이 선정되기 마련이다.
김구 선생은 물론 훌륭한 민족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가 과연 대한민국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적합한가 하는 문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년이면 대한민국이 건국 60주년을 맞는다. 동양에서 환갑이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건국으로 우리 민족사상 처음으로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개인의 인권, 자유, 행복 추구권 보장을 최고 목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탄생했다.
그렇게 해서 출범한 대한민국 자유민주 체제는 가난과 불의와 독재, 전쟁의 험난한 여정을 극복하며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이 나라를 불과 6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대열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교육에 실패했다.
백범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양보할 수 없는 가치였던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건설을 반대하고 끝까지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부인했다. 1948년 4월 백범은 김일성이 남파한 간첩 성시백의 공작에 의해 평양의 ‘남북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 ‘북조선지역에서 전개됐던 사회주의화 작업이 이남지역에서도 전개돼야 한다’는 내용과 ‘남조선 정부 수립 반대투쟁에 동조할 것’을 약속한 내용의 ‘결정서’에 도장을 찍고 돌아왔다.
당시 북한에서는 이미 2년 전인 1946년에 인민위원회라는 단독정권을 수립해 북한지역만의 선거를 거쳐 국회에 해당하는 인민회의를 구성하고, 사회주의헌법까지 채택했으며 대규모 군대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토지개혁과 화폐개혁과 교육개혁을 단행해 북한지역을 독자적 배타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백범의 평양행은 북한 인민정권에 이용만 당한 치욕스러운 것이었다. 백범은 현실정치에서 패배했다. 그의 실패는 장렬한 것이긴 했지만, 정치 지도자로서 지녀야 할 덕목인 ‘현실에 근거한 이상’의 중요성을 그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로부터 괴리된 이상과 명분은 공허하며 최악의 경우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은 대선을 맞는 오늘의 시점에서도 교훈이 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당성과 정체성을 부인한 백범의 고액권 화폐 도안 인물 선정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