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세태가 만연돼 있다. 치열해진 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한 급변하는 환경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이유 하나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합리화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인간답지 못하고 몰가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보다는 목표달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선보다는 나의 이익과 성취가 더 중요한 목적이 돼버린 척박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갈택이어(竭澤而漁)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고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해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연못의 물을 말리면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지만 다음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문공이 자리에 오른 지 얼마되지 않아 성복(지금의 산동성 북현 남쪽)이라는 곳에서 초나라 군대와 일대 격전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전력 면에서 현저하게 열세에 놓여 있었기에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초조해진 진문공은 책사인 호언에게 “초나라 병력은 많고 우리 병력은 적으니 이 싸움에서 승리할 방법이 없겠는가”라고 물었는데 병법에 능통한 지략가답게 “예절을 중시하는 자는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움에 능한 자는 속임수를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속임수를 써보십시오 라고 계략을 일러줬다. 당연히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기 때문에 이 방법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자 진문공은 호언의 계책에 대해 옹계라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데 그도 처음에는 찬성하지 않았으나 더 좋은 방법이 없었으므로 동의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연못의 물을 말려서 고기를 잡는다면 못 잡을 게 어디 있겠습니까만, 이듬해에는 잡을 고기가 없게 될 것입니다. 숲을 태워서 사냥을 한다면 못 잡을 짐승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다음해에는 잡을 짐승이 없게 될 것입니다. 속임수는 어쩌다 한번은 성공할지 모르지만, 다음번에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속임수는 먼 앞날을 내다보는 계책은 아닙니다”고 말했다. 한때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봤던 옹계는 속임수는 극약처방이므로 두 번 다시 쓰지 말아야 할 계책이며, 눈앞의 당장 이익만을 위하는 것은 결국 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갈택이어’는 눈앞의 이익만 추구할 뿐 먼 장래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요즘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보면 당장의 눈앞의 것을 따라가려다가 큰 것을 잃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의리를 저버리면 안 된다. 사람은 모름지기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의로움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 장사꾼과 사업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흔히들 장사꾼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는 사람을 일컫고 사업가는 먼 미래의 이익을 바라보는 사람을 말하는데, 사업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업가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당장 눈앞의 이익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비즈니스를 장기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게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단편적이어서는 안 된다.
물론 연못물을 다 퍼내면 물고기를 잡을지도 모르고 산의 나무를 다 태우면 짐승을 다 잡을 수 있을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연못이 마르고 산이 없는데 다음은 어찌할 것인가. 산을 불태우고 토끼 한 마리 잡았다고 희희낙락하는 사이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현상이 극에 다다르고 있다. 각종 집단마다 눈앞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세력을 과시하기에 바쁘고 후보들은 이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무책임한 공약으로 표를 구걸한다. 현수막 붙이고, 피켓 드는 집단의 손만 들어준다면 도대체 리더십이란 게 왜 필요한가.
침묵하는 자를 위해 말하라. 미래세대의 부담을 걱정하고 눈앞의 이익을 넘어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비전 있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침묵하는 자를 위해 말해야 한다. 지금 고기를 다 잡지 못한다 할지라도 연못을 말리겠다는 발상은 재고해야 한다. 거짓말도 반복할 경우, 사람들은 결국 믿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온갖 음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배고프다고 풀을 뜯어먹으면 그건 호랑이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