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하늘을 찌르며 치솟아 있고 그 영롱하고 맑은 자태는 구름 밖에 서 있구나. -만주와 몽고의 드넓은 뜰을 서북으로 가리키고 한반도와 요동반도를 동방으로 보여 주도다. 이 경관을 누를 자 천하에 없으리니, 천고의 영웅들이 예서 즐비하게 나올 만하도다. 영불독미(英佛獨米)는 어린이들 장난일 뿐이오, 흥하고 피폐함을 어찌 한과 당에게 물을 소냐.- 풍운의 역사를 거듭보건대 국가를 경영한다는 선비들이 어찌 이리 악착스러운가. 영웅호걸들이 각축을 벌였으나 고요하고 평안토다. 오호라, 신성한 제왕의 위업이 예서 비롯했구나.” 일본 메이지시대의 대학자 구니도모 지이껭의 ‘등백두산음(登白頭山吟)’이란 명시의 한 구절이다.
백두산을 찬탄한 글은 무수히 많다.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를 비롯해 역사에 이름이 오른 안재홍, 이광수 등 기라성같은 문인, 학자를 비롯해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문인과 여행객 치고 중국 영토를 거쳐 백두산에 오른 다음 길고 짧은 글 한편 정도 안 쓰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백두산 기행기 중에 구니도모 지이껭처럼 스케일이 큰 글을 쓴 사람은 전무후무하다.
백두산을 한민족과 공유하고 있는 중국민족이 백두산을 탐내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부르며 이 산을 송두리째 자기나라 영토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강한 마당에 대한민국의 정부가 백두산을 중국에 편입시키는 큰 실수를 범했다. 즉 정부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은 2005년 제작해 국내외에 배포한 ‘대한민국 주변도’라는 300만분의 1 소축적 지도에서 백두산을 중국 영토 안에 그려놓았던 사실이 뒤늦게 말썽을 일으키자 서둘러 회수하는 소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의 대학자마저 위에 인용한 시에서 백두산을 최상의 수식어로 칭찬하며 조선을 병탐하려던 자기 나라 권력자들을 “어찌 이리 악착스러운가”라고 꾸짖은 점을 상기할 때 그리고 중국이 백두산을 접수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에서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토지리정보원이 백두산을 중국에 자진해 헌상한 소동은 해프닝이라기보다는 얼빠진 작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