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5 (일)

  • 맑음동두천 8.9℃
  • 맑음강릉 13.5℃
  • 박무서울 8.0℃
  • 박무대전 7.6℃
  • 맑음대구 12.2℃
  • 맑음울산 14.1℃
  • 박무광주 10.9℃
  • 맑음부산 14.9℃
  • 흐림고창 7.1℃
  • 맑음제주 13.0℃
  • 맑음강화 7.9℃
  • 흐림보은 7.9℃
  • 구름많음금산 8.9℃
  • 맑음강진군 12.2℃
  • 맑음경주시 13.4℃
  • 맑음거제 13.0℃
기상청 제공

사랑은 말리고 싸움은 붙여라

털털한 이혼女 vs 소심한 이혼男 한판승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아마 대표적일 거야. 남자와 여자의 미묘한 심리 차이를 설명하기에는.

영화 ‘싸움’(감독 한지승, 제작 시네마서비스·상상필름)의 시작도 여기서 기초했나봐. 도대체 남자와 여자는 왜 그리 다른지. 왜 같은 사안을 두고도 생각하는 게 남극과 북극만큼이나 떨어져 있고 적도 부근에서 만나기란 아예 불가능할 것 같은지.

‘싸움’은 남자의 말을 듣기도 전에 “미안해”라고 말하길 요구하는 여자와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남자의 이별이야기더군.

드라마 ‘연애시대’로 이혼 커플의 새로 시작하는 연애담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 여성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한지승 감독이 본업인 영화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이혼한 커플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어. 한 감독은 시사회 후 ‘연애시대’와의 차별점에 대해 “‘연애시대’는 이혼 남녀의 새로운 연애담이고, ‘싸움’은 이혼 남녀가 이혼 후 맞게 되는 이별 이야기”라고 소개했지.

한 마디로 말해 감정이 격해져 이혼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서로를 ‘나의 남편’ ‘나의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남녀가 이혼 후 정신적으로 쿨한 결별을 맞는 과정을 그린 영화야.

그러나 ‘쿨한 결별’을 맞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충격적이야. 비슷한 소재의 할리우드 영화 ‘장미의 전쟁’은 저리 가라지. 남자를 향한 사나운 개의 습격, 진짜 죽일 것처럼 밀어붙이는 도로 위의 아찔한 추격전, 쇠파이프가 동원되는 막싸움 등등.

비록 상상 속에서 이뤄지지만 여자가 남자의 머리를 도끼로 내려쳐 남자가 피를 질질 흘리는 모습은 코믹한 설정 때문에 웃기기는 하지만 아주 섬뜩해. 이런 살벌한 장면들이 ‘싸움’을 ‘하드 보일드 로맨틱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로 포장하게 했어.

드라마 ‘연애시대’의 한지승 감독 연출작이고, 묵중한 연기를 주로 해왔던 설경구가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한다는 점이 화제였지만 역시 스포트라이트는 김태희였어.

지난해 영화 데뷔작 ‘중천’을 시원하게 ‘말아먹은’(물론 김태희 탓만은 아니지만, ‘김태희 영화 데뷔작’이라는 마케팅이 한 축이었으니) 이후 김태희는 끊임없는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고, 차기작 파트너를 12살 위 띠동갑인 연기파 배우 설경구를 택했다는 점에서 ‘과연’이란 의심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지.

결과적으로는 “대단히 열심히 했다”는 것만큼은 인정하게 만들었다는 것. 커다란 눈에서 흘러내린 마스카라로 얼굴이 온통 뒤범벅이 되고, 현란한 발차기와 성난 목소리는 예쁜 얼굴에 갇혀 있던 CF모델 김태희에게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두게 하더군. 고개를 치켜들고 말하는 버릇은 빨리 고쳐야 하겠지만.설경구의 ‘소심남’ 연기도 흠잡을 데 없었어.

곤충학 전공 교수여서인지 아주 작은 것조차 완벽하게 정리가 돼야 할 정도로 예민한 소심남 상민과 털털한 유리 공예가 진아는 열렬히 사랑해 결혼했으나 2년 만에 파경을 맞은 커플이야. 이들은 결혼 생활 내내 사사건건 부딪치고, 그때마다 큰 말싸움으로 번졌으며 언제나 “미안해”라고 말해주길 원하는 진아에게 “유감이다”라고 답하는 상민의 신경전으로 막을 내리지.

아무리 잘 헤어졌다고 말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상민의 거짓말에 아주 중요한 방송도 포기하고 쫓아가는 진아의 행동이나 뭔가 허전하다고 느끼는 상민의 감정은 아직 심정적으로는 결별하지 못한 이들의 상태를 말해줘.

늘 사소한 오해가 살벌한 싸움을 유발하고, 싸우면서 이들은 서로에게 익숙한 존재였다는 걸 깨닫지. 거의 서로를 죽이기 직전에 이르기까지 싸우면서 서서히 감정 정리를 해. 해피엔딩이냐구? 해피엔딩이지. 그런데 그 결말이 통속적인 건 아냐. 아마 이상적인 남녀간의 이별 이야기일 걸. 이 영화가 깔끔한 느낌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지.

상업영화로서 이 영화는 꽤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아. 여자들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것, 남자들이 감춰두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 풀어내는 데 너무 진지하게만 흐르지 않고 코미디로 포장해 관객이 보기 편하게 만들었으니.

두 사람에 집약된 이야기로 111분이 채워졌기 때문에 영화 중간엔 다소 지루할 때도 있지만 그리 흠잡을 만큼은 아니야. 코미디, 호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 기법을 동원해 종합선물세트처럼 만들었으나 영화의 외피보다는 남녀의 감정의 흐름에 집중했으니 이를 더 관심 있게 보면 되겠지. 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