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인들은 미국의 대통령이 협잡꾼(Crook)인지 아닌지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저는 협잡꾼이 아닙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은 지금까지 제힘으로 힘껏 노력해서 얻은 것입니다.” 이상은 1974년 8월 8일, 리처드 M. 닉슨 대통령이 대통령직 사임에 즈음해 발표한 대국민 사과연설 중 일부이다. 그러나 그는 ‘협잡꾼’의 누명을 쓰고 다음날 백악관을 떠났다.
제37대 미국 대통령 닉슨(1968~1974년)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의혹 속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젊고 용기 있는 워싱턴 포스트(WP)의 두 기자와 양심적인 한 공무원의 언론제보까지는 막지 못한 채, 미국 역사상 임기 중 쫓겨난 첫 대통령이 됐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한 마디 거짓말이 그의 정치생명을 끊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출발은 아주 사소한 절도 혐의였다. 1972년 6월 27일 새벽 5명의 배관공(Plumber)들이 워싱턴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 고장난 도청장치를 수리하려다 경비원에 의해 발각돼 경찰에 체포된다. WP의 신출내기 기자 밥 우드워드를 비롯한 워싱턴의 젊은 경찰기자들은 모두 경찰의 판단대로 이 사건을 단순히 야당 선거사무실에 대한 절도 정도로 가볍게 봤다. 당시 각 신문은 이 사건을 사회면 1단으로 실었다.
우드워드 기자는 불과 1년 전 예일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기자가 되기 위해 워싱턴 포스트를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편집국 간부에게 2주일간의 기회를 준다면 멋진 기사를 쓰겠다고 생떼를 썼다. 2주일 동안 17건의 기사를 썼지만 단 한 건도 실리지 못했다. 소개받아 취업한 한 지방지에서 그가 1년간 탐사기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자 WP도 그를 정식 채용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 사건을 만난 것이다.
그도 처음에는 이 사건을 가볍게 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동료 기자 칼 번스타인과 상의, 워싱턴 포스트의 전통 있는 취재방식인 탐사보도에 나서게 된다. 이때부터 두 기자에게는 우드스타인(Woodstein-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의 합성어)이라는 애칭이 붙는다.
우드스타인은 사건 발생 조금 뒤 절도 피의자 5명에 대한 보석 심리가 진행 중인 법정을 찾았다. 거기서 그들은 한 사람이 ‘전직 CIA직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전혀 뜻밖이었다. 그들은 대단한 뉴스거리라고 생각했지만 풋내기 기자들이 더 이상 취재할 길이 없었다. 이 무렵 한 공무원으로부터 “자금을 추적해 보라”는 제보를 받게 된다.
우드스타인을 빌딩 지하 주차장으로 직접 불러내 결정적인 단서인 ‘자금 추적’ 제보를 한 사람은 당시 FBI 부국장 마크 펠트였다. 그들은 펠트를 ‘딥 스로트(Deep Throat)’라고 불렀다. 그의 정체는 편집국장과 두 기자만이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캐서린 그레이엄 사장이 편집국장에게 딥 스로트의 정체를 물었을 때 벤 브랜들리 국장은 “본인이 죽은 뒤에나 밝힐 것”이라고 답변을 거절했다. 펠트의 정체는 그가 91세가 되던 지난 2005년 5월 한 잡지의 인터뷰 기사로 드러났다. 가족들의 설득 때문이었다.
WP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하던 시절, 마음고생이 가장 많았던 사람은 바로 여사장 그레이엄이었다. 그레이엄 여사의 회고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 바로 직전 한 리셉션에서 만난 헨리 키신저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우리가 재선에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라고 따지더라는 것이다.
그때 그레이엄은 “우리도 여론조사를 본다. 닉슨의 재선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키신저는 “닉슨은 재선된 뒤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을 손봐주고 싶어 한다”고 귀띔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워싱턴 포스트는 세무조사 등 갖은 협박을 받았지만 그레이엄은 잘 이겨냈다.
닉슨의 불명예 퇴임은 언론자유의 승리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맡았던 존 시리카 판사는 다시 한 번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더 중요한 것은 ‘WP’가 헌법의 보호를 받는 자유언론(The Free Press)의 일부라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 이후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인 이명박 당선인과 BBK의혹, 특검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헌재가 중단시킬 것인지 전망은 불투명하다. 우드스타인이나 그레이엄 같은 언론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의혹은 워터게이트보다는 훨씬 단순하다. “나와 관계없다”와 “창업했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만 밝히면 그만이다. 역동적인 국민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