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호위’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뜻이다.
남의 권세를 빌려 허세를 부리는 사람,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방자하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안하무인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중국의 전국시대 초나라의 선왕이 위나라 출신의 신하인 강을에게 북방 강대국들이 초나라 재상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묻는다. 강을은 여우와 호랑이의 고사를 인용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산중에 짐승들이 두려워한 것은 여우가 아니라 그의 뒤에 있는 호랑이였다는 것으로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재상 소해휼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선왕의 강한 군사 때문임을 비유한 것이었다.
이 고사에서 ‘호가호위’라는 말이 나왔으며 오늘날 이 말은 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권위를 빌려 남을 등쳐먹는 행위를 일삼는 것을 비유하여 사용된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군침을 흘리는 여우들이 호랑이를 등에 업고 마치 제 세상 만난 듯 날뛰고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이 보인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안영이란 재상이 있었다. 어느날 안영이 외출을 하게 되어 마차를 타게 되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지나가니 사람들이 존경스럽고 두려운 눈빛으로 길을 비키거나 엎드리곤 했는데, 마차를 부리는 마부는 마치 자기가 위대해진 듯 우쭐거리며 마차를 몰았다. 그때 마차가 집 앞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은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살며시 내다보았다.
그런데 재상 안영은 다소곳이 앉아있는데 마차를 모는 남편이 기고만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수많은 백성들이 재상의 마차에 절을 하면 이 마부는 마치 자기에게 절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거드름을 피운 것이다.
어느 날 마부의 아내가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남편이 그 이유를 묻자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안영께서는 키가 6척도 안되지만 재상이 되셨고, 그 명성도 자자합니다. 그런데도 의연하고 겸손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8척의 거구로 남의 마부가 되어 우쭐대고 있으니 그런 당신과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정작 재상인 안영은 다소곳이 앉아있는데 마부 주제인 남편이 기고만장하는 모습이 너무나 역겨워 살 수 없다는 말이었다. 쥐꼬리만한 권한이라도 주어지면 고자세가 되어 안하무인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이다.
중국 광동성의 경제특구 선전시는 간부 부인들의 부패 참여유형 7가지를 예시하며 반드시 추방해야 할 악덕으로 꼽았다. 간부의 부인들이 명심해야 할 신판 칠거지악인 셈이다.
그 중엔 남편의 권력을 업고 부패를 즐기는 호가호위형이 있는가하면 남편보다 한술 더 뜨는 설상가상형이 있고, 남편의 귀에 대고 사익을 부추기는 베개 송사형, 남편이 챙긴 부패의 과실을 즐기는 감각마비형 등등을 열거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남편의 배경을 믿고 호가호위 하지 말아야 하며, 생활은 질박하고 검소해야 하고 공무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해선 안된다 등등 친척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명시한 적이 있었다.
남의 명성에 편승하여 자신의 잇속을 차리려는 호가호위하는 자들 때문에 세상이 뒤숭숭한 것이다. 인생사를 눈여겨보면 때로는 아무런 실력이 없으면서도 남을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알량한 보직하나 얻었다고 목불인견을 연출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어줍잖은 지위를 믿고 몹시 잘난체하는 기량이 작은 마부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온통 무법천지가 되어 버리고 만다. 주어진 권한도 자중할 때 아름다운 것이고, 섬김에서 권위가 나오는 것이다. 호가호위가 아니라 자신의 본분을 지켜나가는 것이 도리이다. 자신의 재능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면 고사에 나오는 마부처럼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