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이 갑자기 거론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연설을 연초에 바짝 앞당겨 실시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청와대측의 설명에 의하면 내년 1월 초에 있을 이대통령의 신년연설은 예년에 비해 보름가량 빠른 것으로 경제살리기를 위한 ‘속도전’의 일환이란다.
이대통령이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속도전’을 강조하면서 뒤늦게나마 여러군데서 그 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경제팀들은 내년 초 있을지 모를 개각에서 경질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인지 아니면 외부의 압력 또는 발 빠른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경우에서의 학습효과로 인한 것인지 소극적인 태도에서 갑자기 기어를 1단 올려 선제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듯하다.
신의 직장이라고 일컬어지던 공기업들에게도 칼바람이 분다. 정부가 지난 21일 발표한 ‘4차공공기관선진화계획’에 따라 우선 합의된 69개 공기업이 향후 3-4년간 1만9000명을 감축한다고 한다. 드러난 숫자보다는 그 내용과 경영효율화가 더 중요한 대목이긴 하다.
국회에서는 18일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상정을 둘러싸고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대해 야당의 원내대표는 “국회파행의 원인은 이 대통령의 ‘속도전’ 지시와 한나라당의 충성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몰아 붙였다.
그런가하면 속도전에 합류하지 못해 속타게하는 자들도 있는 것 같다. 한국은행이 최근 두달새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3%로 낮추었는데도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천천히 내리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하락폭으로 여전히 높은 이자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업과 개인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관가에선 일부 부처의 고위직공무원들이 일괄사표를 내고 그 수리 여부만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속도가 더딘 공직자들이 아직도 상당수 있다고 하여 아직 불똥이 튀지 않은 다른 부처의 고위직들은 술렁거리는 모양이다.
22일 국토해양부 등 4개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이 대통령은 “앞으로 나나가는 대열 여기저기에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열 전체가 속도를 낼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변화와 개혁의 속도는 주춤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속도전’의 행렬 뒤에 뜻하지 않는 복병도 숨어 있다.
“국회가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된 것이 송구하다.” 이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상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국회내 폭력사태에 대해 김형오 국회의장이 한 말이다.
세계적 금융위기로 기사가 넘칠 외신들도 이번 사태가 있은 다음날 귀한 지면을 아까워하지 않고 할애해 주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 인터넷판은 우리 선량(?)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담은 11장의 사진을 함께 실어주었고, 미국의 뉴욕타임즈도 “싸우기 좋아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reflecting the nation’s feisty brand of democracy)”이라고 논평했다. 일본의 NHK까지 친절하게도 저녁 메인뉴스에 동영상과 기사를 보도해 주었다. 이만하면 일부러 애써가며 힘들이지 않은 보도자료로서는 거의 퍼펙트한 수준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상식이고 소통이다.
서로를 나아가 자신들을 깍아내리는 자극적인 언어들은 최소한 삼가야 한다.
국정감사 등 회의 중에는 서로를 “존경하는ㅇㅇㅇ의원님” 하더니만 “존경‘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모른단 말인가 아니면 정말로 의례적인 수사에 불과했다고 자백하고 싶단 말인가?
일방적 진행과 물리력 동원은 적어도 대화의 장인 국회에서는 피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뽑아놓은 국회의원들은 “청와대나 강경세력의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여전히 정략적 계산에만 몰두”하고 “시정 깡패 수준”이고 “조폭 야당”이고 “불순한 기도”를 하고 “난장판 국회”를 만드는 “불쌍한 똘마니들”인가?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정략이 있어 “패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는 하지만, 당신들을 국회로 보내준 국민들을 바라보며 좀 더 솔직하고 설득력 있는 대화와 타협으로 입장을 조율하지 않고서는 “날치기”가 되거나 길거리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심정은 이해한다. 오죽하면 그럴까. 얼마나 막히고 답답했으면 서로를 설득시키지도 못하고 람보(?)행세도 하였을까. 귀가 막히면 기막힐 일이 벌어진다. “탱크를 밀고오니… 결사투쟁밖에 길이 없다”지 않는가!
좀 더 마음을 크게 열고 한 번 더 노력해 보자. 지금 닥친 아니 더 쎄질 내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혜를 모아 신중한 선택을 하자. 그리고 우리의 모든 힘을 집중해 보자. 그야말로 대열 전체가 같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선도에 서보자. 못할 것이 뭐 있겠는가?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가 ‘빨리빨리’라면서. 새해에는 이 ‘속도전’의 신바람이 우리 한국에서부터 전 세계로 훈훈하게 불어 나가기를 기대한다.